컨텐츠 바로가기

05.17 (금)

[수사반장] 그 사업가는 왜 10년만에 얻은 아이까지 살해했을까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13일 홍콩 웨스트 카오룽 지역 5성 호텔 리츠칼튼 CCTV에 기록된 국내 식품업체 대표 김모씨(42)와 아내 송모씨(42), 그리고 아들 김군(6)은 웃고 있었다. 김씨 일가는 홍콩 디즈니랜드와 오션파크 등 놀이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행을 온 여느 가족같이 편안한 모습이었다.

다음날인 14일 오전 7시쯤. 김씨는 회사 직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와 가족 모두 자살하려 한다." 문자를 받은 직원은 경찰에 신고하고, 외교부 콜센터에 알렸다.

조선일보

홍콩에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는 김씨.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캡처


오전 8시30분쯤. 리츠칼튼 호텔 측의 "싸움이 벌어진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홍콩 경찰이 김씨가 묵고 있는 방 앞에 섰다. 바다전망인 방은 하룻밤 묵는데 8000홍콩달러(약 108만원)를 내야하는 스위트 룸이었다.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자 경찰이 강제로 문을 열었다.

김씨는 방 소파에 속옷만 입은 채 앉아 있었고, 아내 송씨와 아들은 침대에 나란히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목 주변에 칼로 찔린 자상이 있었다. 현장에는 13cm 크기의 세라믹 칼이 있었고, 미니바에 비치됐던 술은 거의 모두 비워져 있었다. 객실에는 다툼이나 저항의 흔적이 없었다.

현장에서 살인 혐의로 체포된 김씨는 술에 취해 괴성을 지르며 현지 경찰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이후 술이 깨고 난 뒤에 경찰에 한 첫마디는 "술에 취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였다. 김씨의 아내와 아들은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되던 중 사망선고를 받았다.

행복해보였던 한 가족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홍콩 경찰과 지인들은 사업 실패를 범행 동기로 보고 있다. 지난 15일 김씨의 30년지기 친구인 A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친구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어려워졌단 얘기를 주변에서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해외 초콜릿 브랜드를 들여와 한국 프랜차이즈 사업을 크게 사업을 벌였다. 서울 홍대, 종로, 삼성, 잠실, 부산 등 총 5곳에 체인점이 있으며, 스타벅스와 같이 카페 형태로 커피와 차를 팔면서 초콜릿도 판매하는 매장도 운영 중이었다.

15일 기자가 찾은 김씨 회사는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해있었다. 김씨는 홍대입구 인근 5층 건물을 임대, 1~3층은 매장, 4~5층은 사무실로 사용했다. 이날 기자 눈에 띈 것은 ‘전층임대’라는 현수막이었다. 매장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체 관계자는 “사업 부진으로 사업체가 철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미 새로운 계약자와의 임대 계약을 마친 상태”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씨가 운영하는 회사 사옥은 새로운 계약자와의 임대 계약이 완료된 상태였다. /한동희 기자


서울 시내에 있는 5개의 지점 중 연락이 닿은 곳은 한군데 뿐이었다. 한 지점장은 "본사 직원들과 연락이 끊긴 지 한달이 넘었다"면서 "식자재 공급도 두달전부터 끊겨 남아있는 재고만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월급도 넉달 밀렸다"며 "13명 정도 있는 본사 직원들도 모두 퇴직금도 못받고 퇴사한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임금 체불에 시달리는 임직원들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 5일 올라온 청원에는 지난해 8월 이후 임금이 제때 지불된 적이 없었고 대표인 김씨가 책임을 지지 않고 잠적했다는 내용이 적혔다.

김씨의 회사는 수익성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점 확장에 집중했다. 2016년 매출은 35억원이었지만, 이익은 226만원에 불과했다. 2015년에는 7억원의 적자를 보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김씨는 13%대의 이익률을 약속하는 크라우드펀딩(온라인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수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야심차게 낸 8곳의 매장 중 절반이 1년을 못 넘기고 지난해 문을 닫았다.

김씨는 친한 친구들에게 조차 경영난을 털어놓지 않았다. 김씨의 지인은 "자존심이 세고 조금은 허세가 있는 친구였다"며 "매년 한두번 하는 모임에서 늘 자신감 있고 밝은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씨의 SNS에는 가족들과 찍은 사진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캡처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김씨는 가족에 대한 애착이 컸다. 한 지인은 "결혼한 지 10년 만에 어렵게 아이를 얻었다"며 "회사 운영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짬이 나면 아들을 데리고 집 근처에 있는 놀이공원에 자주 놀러갔다"고 말했다. 김씨의 SNS에는 "나에게 매일 새로운 활력을 주는 유일한 원천은 가족이다"고 적힌 글과 함께 나들이를 간 사진이 올라와 있다.

김씨의 지인은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추측컨대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행복한 기억을 심어주려고 홍콩 여행을 간 게 아닐까 싶다"며 “어떻게든 도움을 받거나 사업에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홍콩 경찰에 구속된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 15일 홍콩에 도착해 주홍콩 영사관의 도움을 받으며 장례 절차를 밟고 있다.

[한동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