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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보류…설익은 정책추진 화 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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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학부모 반발에 내년 초로 결정시기 연기

학부모 불안 해소·공교육 신뢰회복부터 추진키로

뉴스1

교육부 청사 © News1 장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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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형진 기자 = 교육부가 16일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과정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3주 만에 전면 보류한 배경에는 사교육 부담 증가를 우려한 학부모의 반발이 자리하고 있다. 학교수업만으로 유치원에서 영어교육을 받은 학생을 따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신이 여전한 상황에서 설익은 정책 추진으로 화를 자초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교육부가 이날 발표한 대책의 핵심은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과정 영어교육 금지에 대한 최종 결정을 2019년 초로 미룬 것이다.

당초 교육부는 오는 3월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후과정에서 영어교육을 전면 금지할 방침이었다. 지난 12월27일 발표한 '유아교육 혁신방안'에서 이런 방침을 처음 밝혔다. 놀이·유아 중심으로 누리과정을 개편하면서 방과후과정도 학습이 아닌 놀이 중심으로 개선하겠다는 취지였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방과후과정에서 영어교육을 허용하면 정책 모순이 발생하는 측면도 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영어교육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된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오는 3월부터는 초등학교 1~2학년도 방과후과정에서 영어수업이 금지된다.

시·도 교육감의 요청도 있었다. 세종과 제주교육청은 지금도 유치원 방과후과정에서 영어교육을 금지한다. 일부 시·도 교육청도 이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들은 지난 11일 협의회 차원에서 선행학습금지법 적용 대상에 유치원을 포함하는 개정안을 교육부에 제안했다. 유치원 방과후과정에서 영어교육을 금지해야 한다는 뜻이 담겼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학부모 반발이 거셌다.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정책을 폐기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글에는 9000여명이 동참했다.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과정에서 영어교육을 금지하면 사교육비 부담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교육격차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급속히 확산됐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실시하는 학교 수업만으로 영어 사교육을 받은 학생을 따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학부모의 불안감이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부가 초등학교 1~2학년 한글교육을 대폭 강화했지만, 대부분 학부모가 초등학교 입학 전 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영어 조기교육 금지론자인 이병민 서울대 교수조차 최근 한 언론 기고에서 "영·유아를 둔 학부모들의 불안이나 기대 또는 경쟁의식을 제대로 해소해주지 못하면, 정부의 유아 관련 영어교육 정책은 착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교육부의 정책 추진 과정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교수는 기고에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는데, 그렇게 믿고 따라가도 되는지, 그런 불안과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자꾸 주변을 살피고, 남들이 하는 것의 최소한이라도 따라가려고 한다"며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더 이상 학교나 사회에서 손해를 보거나 차별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에서 교육부도 "현행 학교 영어교육의 적절성 문제 제기 등 엉어교육 전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국민의 우려와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라고 설익은 정책 추진을 일부 인정했다.

교육부가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제도개선 의지를 밝힌 것은 학부모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된다. 지도·점검을 강화해 유치원 방과후과정에서 과도하게 영어수업을 하거나 영어학원과 연계해 편법 운영하는 관행도 개선할 방침이다.

공교육 신뢰회복 방안도 추진한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가 책임지는 영어교육을 목표로 별도의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사회·경제적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양질의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를 위해 연말까지 '학교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학부모 불안 해소와 공교육 신뢰회복 장치 없이 섣부르게 설익은 정책을 발표했다가 거둬들인 데 대한 비판은 잠재우기 어려울 전망이다. '애매한 입장'도 여전하다. 교육부는 내년 초까지 유치원 방과후과정 운영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영어수업 금지' 방침 자체가 유효한 것인지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가 설익은 정책 추진으로 논란을 자초한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부터 절대평가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정책결정 시기를 1년 미뤘다. 외국어고·국제고·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정책도 학부모 반발이 거세자 '우선 선발권'부터 없애는 수준에서 일단 봉합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법적, 교육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학생 및 학부모의 여론을 반영한 현실적 결정으로 본다"면서도 "정부의 정책이 번복되고 혼선을 초래한 점은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현 정부의 정책이 전 정부와 많이 다른 만큼 앞으로 반대나 우려의 목소리가 충분히 예상된다"면서 "공약이라고, 입장이 결정됐다고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사전에 다양한 목소리를 충분히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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