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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Why] 세계 최고 가구 디자이너, 한국 오자마자 남의 집 찬장부터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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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국 찾은 이케아 글로벌 총괄 디자이너 마르쿠스 엥만

아버지도 이케아 디자이너… 베스트셀러 소파 '클리판' 디자인 해

가정방문으로 소비자 관찰… 냉장고·찬장 높이 측정

제품의 적정 크기 등 정해… 한국도 1980년부터 조사

우주로 가는 이케아… 제한된 공간의 삶 준비… 제품 납작하게 포장

조선일보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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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남서쪽으로 477㎞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 '알무트'. 아버지가 이케아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이곳으로 이사를 온 10세 소년 마르쿠스 엥만(Marcus Engman·사진)은 숲으로 둘러싸인 재미없는 이 마을이 싫었다. 학창 시절엔 주말마다 이케아로 아르바이트를 나가야 했고, 고등학교 여름방학 땐 이케아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목표는 '크면 절대로 이케아에서 일하지 않을 거야'였다. 그의 아버지는 이케아의 베스트셀러 소파 '클리판(Klippan)'을 디자인한 라스 엥만이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역시 이케아. 디자인·글로벌 전략 등을 담당하다 개인 사업을 해보겠다고 회사를 뛰쳐나갔지만, 12년 만에 다시 돌아와 이케아 디자이너 중 가장 높은 '글로벌 총괄' 자리에 2012년 올랐다. 그는 "이케아의 신념과 가족 같은 직원들이 날 다시 돌아오게 했다"고 말했다. 최근 처음 한국을 찾은 엥만(51) 총괄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났다.

―이케아로 돌아온 이유는.

"좋은 디자인을 다수가 누릴 수 있게 한다는 '데모크래틱(democratic·민주적인) 디자인'. 이케아처럼 크고 고집이 강한 기업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케아가 탄생한 알무트는 자원이라고는 돌뿐인 가난한 도시였다. 무언가를 창조해내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웠다."

―좋은 디자인이라는 건 주관적인 기준 아닌가.

"우리는 그 기준을 디자인(형태), 기능, 품질, 지속 가능성, 낮은 가격 등 다섯 가지로 정해놓고 있다. 한 가지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100여 명이 수백 개의 조사를 진행한다. 이 물병을 출시할 때를 예를 들어보자. (입구가 좁은 물병 '카라페(carafe)'를 들어 보이며) 물병을 싼 가격에 판매하려면 많은 사람이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냉장고와 찬장 높이를 책정해 쉽게 들어가도록 평균 높이를 낸다. 입구가 좁으면 물을 따를 때 소리는 좋지만 식기세척기나 손으로 세척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으니 적정한 너비를 찾는다. 물병 마개는 지속 가능한 제품이어야 하니 환경을 해치지 않는 코르크를 선택했다. 이런 기준에 따라 샘플만 50개를 만들었고, 그중 최적의 디자인을 선정해 출시했다. 이 과정이 보통 3년 걸린다. 이 제품은 현재 한국에서 3900원에 판매 중이다."

―조사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가정방문을 통해 얻는 것이 가장 많다. 최종 소비자를 직접 관찰한다는 것은 새로운 고민과 해결 방법을 동시에 안겨주는 법. 한국도 1980년부터 가정방문을 하며 시장 진출의 기회를 봐 왔다."


조선일보

마르쿠스 엥만 이케아 글로벌 총괄 디자이너는 처음 찾은 한국에서 평범한 가정집을 찾아 눈을 반짝였다. 한국 가정집의 거실 소파, 아이들 장난감 방, 전기장판을 디자이너의 눈으로 담아 갔다. / 이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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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정을 직접 본 적이 있나.

"오늘 아침에도 한 가정을 방문했다. 가장 큰 특징은 수납 공간의 부족이었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한국은 재활용 정책 때문에 집 안 별도 공간에 쓰레기를 수집해야 하다보니 이로 인한 공간 부족이 심각했다. 집 크기에 비해 소파는 크다고 느꼈고. 아이들은 자신의 방이 있지만, 놀 때는 방 안의 장난감을 모두 거실로 들고 나와 노는 것도 흥미로웠다. 재미있는 제품도 있었다. 열이 발생하는 카페트(전기장판). 이를 러그 대신 거실에 깔아놨더라. 날씨가 추운 스웨덴에 사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11월 이케아는 말름(malm) 시리즈 서랍장에 대해 대대적인 리콜을 시행했다. 그해 5월 미국에서 두 살짜리 남자 아이가 서랍장에 깔려 숨지는 등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말름 서랍장 디자인은 실패 사례인가.

"말름 서랍장은 벽에 고정해 사용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벽에 고정하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는 서랍장을 연구하고 있다. 보통 300개의 좋은 아이디어 중 살아남는 건 10%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는 계속해야 한다."

―이케아 가구 조립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가구 조립을 나사 방식에서 '끼움촉(wedge dowel·공구 없이 끼워서 사용하는 조립 기구)'으로 전환 중이다. 특히 최근에는 이사 횟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가구를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해도 내구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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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문제도 고민 이케아가 난민을 돕기 위해 디자인한 LED 손전등. 건전지 없는 태엽 방식으로 20~30번 감으면 90초 정도 불이 들어온다. / 이케아


―디자인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나.

"여행이나 건축, 패션 등 가구 외 부분에서 많이 받는다.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디터 람스(Dieter Rams). 다른 디자이너나 기업들과 협업도 좋아한다. 마찰과 충돌을 통해 새로운 시너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의 집은 지금보다 공간이 협소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개인당 집 거주 시간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혼자 사는 '집순이·집돌이'들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미래의 인테리어는 어떤 형태일까.

"'빅테이블' 같은 다용도 가구들이 주력이 될 것이다. 인테리어는 감성이 더욱 요구될 것이라고 본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향기, 편안함을 주는 소리처럼. 그래서 우리는 스웨덴 향수 회사 '바이레도'와 미국 블루투스 스피커사 '소노스' 등과 협업 중이다."

―우주에서의 삶도 고민한다고 들었다.

"이케아 제품들은 대부분 납작하게 포장한다. 우주에서의 삶에 대한 준비 중 하나다. 우주는 제한된 공간이니까. 재난에도 관심이 많다. 현재 요르단강 주변 난민들이 디자인에 참가하고 있다. 전 세계 14억명의 사람들이 식수와 전기, 인터넷 등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도 디자인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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