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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국내로 번진 '망중립성 폐기' 바람…"깊어지는 인터넷⋅콘텐츠 사업자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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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망중립성 원칙 폐지로 국내 통신 사업자들의 망중립성 원칙 폐지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인터넷⋅콘텐츠 사업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망중립성 원칙이 폐기되면 트래픽을 많이 사용해온 인터넷⋅콘텐츠 사업자들이 통신사에 망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통신사들이 보유한 콘텐츠 자회사들이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점도 부담이다.

조선비즈

아지트 파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이 2017년 12월 14일 워싱턴DC에서 망중립성 원칙 폐기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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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협, 통신사와 대립각…“자본력 있는 인터넷콘텐츠 업체만 살아남을 것”

17일 국내 인터넷⋅콘텐츠 업체들을 대표하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이하 인기협)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망 중립성 원칙 폐기 결정과 관련해 “차세대 인터넷 산업의 육성과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국내에서의 망 중립성 원칙은 더욱 공고히 유지되고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망중립성 원칙은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통신 사업자가 인터넷으로 전송하는 데이터 트래픽을 내용·유형 등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은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를 기간통신사업자로 법령에 못박고 이를 근거로 망중립성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망중립성 원칙이 폐기되면 통신 사업자들은 인터넷·콘텐츠 기업의 특정 서비스에 비용을 더 많이 부과하거나 각 회사의 인터넷 서비스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돈을 적게 내는 회사의 데이터 처리와 트래픽 속도를 늦추고 돈을 더 많이 내는 회사의 속도를 올려주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대용량의 빠른 데이터 전송이 필수인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 새로운 콘텐츠 산업의 발전으로 망중립성 원칙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통신사를 중심으로 확산돼 왔다.

통신사들은 매년 급증하는 데이터 트래픽에 맞춰 통신망에 투자하려면 인터넷⋅콘텐츠 업체들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012년 월 2만3000테라바이트(TB) 수준이던 국내 통신 트래픽은 2017년 1월 25만 테라바이트를 넘는 등 5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통신업체 관계자는 “5세대(G) 통신 시대가 되면 지금보다 트래픽이 수십배로 늘어날텐데 네트워크 설비 투자는 모두 통신사가 부담하고 있다”며 “콘텐츠 사업자만 무임승차해 막대한 수익을 거둬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망중립성 원칙을 수정하거나 폐기해 인터넷⋅콘텐츠 업체에게도 망 사용에 대한 비용을 분담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터넷⋅콘텐츠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망중립성 원칙 덕에 콘텐츠 플랫폼 사업자들이 별도의 추가 요금을 내지 않고도 마음껏 망 사업자가 제공하는 인터넷을 이용해 왔고 이는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하는 원동력이 됐다”며 “이 원칙 폐기 후에는 자본이 많은 인터넷⋅콘텐츠 업체와 통신사가 보유한 콘텐츠 자회사들만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도 17일(현지시간) “망중립성 폐기는 페이스북·구글·아마존과 같이 엄청난 재력(deep pocket)을 지닌 ‘빅 인터넷 회사’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될 것”이라며 콘텐츠 생태계가 대자본 위주로 재편될 것을 우려했다.

◆ ‘월정액제’ 사라지고 ‘종량제’로 바뀔수도…“통신사만 유리”

인터넷⋅콘텐츠 업계는 정부가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하면 소비자 편익이 현저히 떨어질 것으로 우려한다. 월정액제로 제공해온 서비스들이 종량제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통신사가 보유한 콘텐츠 자회사들은 통신사의 지원으로 시장에서 더욱 유리한 위치에 설 것이라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한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관계자는 “통신사들이 자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보유한 상황에서 손쉽게 기존 인터넷⋅콘텐츠 시장 장악에 나설수 있을 것”이라며 “통신사에 망 사용량에 따른 추가 비용을 내야되기 때문에 기존 같은 월정액제 서비스 제공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다”고 말했다.

음원 스트리밍 업체 관계자는 “일례로 KT의 경우 지니뮤직이라는 음원 콘텐츠 자회사가 있는데 망중립성이 폐기되면 음원 사업 경쟁에서 통신사 자회사에 밀릴 수 밖에 없다”며 “사실상 특정 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여 독과점을 허용해 주는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017670)은 포털 검색서비스 ‘네이트’를 운영하는 SK컴즈를 자회사로 가지고 있고, SM엔터테인먼트의 콘텐츠 제작 자회사 SM C&C의 2대 주주다. KT(030200)는 음원서비스 업체 지니뮤직과 디지털 콘텐츠 유통 자회사인 KTH를 가지고 있다. LG유플러스(032640)는 콘텐츠 제작사인 미디어로그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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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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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북, 유튜브 등 글로벌 사업자들도 예의주시

그동안 국내에서 망 사용료를 제대로 내지 않고 무임승차해 논란이 된 페이스북, 유튜브 등 글로벌 인터넷⋅콘텐츠 사업자들도 한국 내 망중립성 원칙이 어떻게 결론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통신사업자들이 망중립성 원칙 폐기를 무기로 서비스를 차별화해 본격적인 과금에 나설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압도적인 트래픽을 내세워 국내 통신사에게 우회수단인 캐시서버를 별도로 제공받지만, 망 사용료는 거의 내지 않고 있다.

통신사들은 이들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입자들의 불만을 우려해 ‘울며 겨자먹기’로 캐시서버를 제공하고, 이들은 돈 한푼 내지 않고 서비스 품질을 유지해왔다. 지난 5월에는 SK브로드밴드가 페이스북의 캐시서버 설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국내 사용자의 접속을 차단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ISP 업계 관계자는 “망중립성 원칙이 국내에서도 폐기되면 글로벌 인터넷⋅콘텐츠 사업자들의 무임승차와 횡포를 막을수 있을 것”이라며 “소비자들에게도 보다 더 좋은 품질의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ISP 업계 관계자는 “특히 페이스북이 내년 초 스마트폰 없이도 사용가능한 VR 플랫폼 디바이스 ‘오큘러스 고’를 출시하는 등 데이터 트래픽이 큰 VR 콘텐츠 사업을 확장할 계획인데 한국의 망중립성 폐기는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망중립성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미국의 망중립성 원칙 변화가 국내 정책에는 영향을 미친다고 볼수는 없다”며 “망중립성에 관한 국내 가이드라인을 당장 변경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6일 사견을 전제로 “데이터 트래픽을 과도하게 유발하는 업체에 대해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도 “망 중립성 원칙은 과거 국가 주도로 구축한 인프라에서는 적합했지만 5G 시대로 바뀌는 상황에서는 과거지향적인 원칙”이라고 말했다.

심민관 기자(bluedrag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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