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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25년 텃밭 뺏긴 공화당… 트럼프의 뼈아픈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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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라배마 보선 민주당에 져… 트럼프 정치적으로 큰 타격]

트럼프, 힐러리 28%p差 압도한 곳

무어 후보, 트럼프가 밀어줬건만 성추행 의혹 '미투' 휘말려 낙선

美상원 공화당 51 : 민주당 49… 공화서 1명만 이탈하면 정책 제동

NYT "트럼프 바늘에 찔리는 고통"

트위터에 "질 줄 알았다" 슬쩍 발 빼는 트럼프

12일(현지 시각) 실시된 미국 앨라배마주(州) 상원 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더그 존스(63) 후보가 성추문 논란에 휩싸인 공화당의 로이 무어(70)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개표 결과 존스 후보는 49.9%를 득표해 48.4%를 얻은 무어 후보를 1.5%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앨라배마주는 대표적인 공화당 텃밭인 '레드 스테이트(red state)'로 민주당이 이곳 상원 선거에서 이긴 건 25년 만에 처음이다. 작년 11월 대선 때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무려 28%포인트 차로 압도한 지역이다.

이에 따라 미 상원(총 100석)에서 지금까지 52석이었던 공화당 의석수는 51석으로 줄어들고 민주당은 49석으로 늘게 됐다. 공화당 의원 중 한 명만 이탈하면 감세안, 반(反)이민 정책, 멕시코 장벽 건설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주요 국정 과제가 곧바로 제동 걸릴 상황이 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공화당은 '51대49'라는 위태로운 다수당이 되었고, 이마저도 내년 중간선거에서 역전될 위험에 처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마지막 순간까지 무어 후보를 지원한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후폭풍에 휘말리게 됐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 공화당 지도부는 무어 후보에 대해 10대 소녀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후보 교체를 주장해왔다. 뉴욕타임스(NYT)는 "후보 교체를 요구하는 공화당원들에 맞서 무어를 지지한 트럼프 대통령은 바늘로 찔리는 듯한 고통을 겪게 됐다"고 했다.

앨라배마주 상원 의원이었던 제프 세션스가 지난 2월 법무장관에 임명되면서 치르게 된 이번 보궐선거는 공화당의 싱거운 승리로 끝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선거 초반 무어 후보의 미성년자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후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캠페인과 맞물려 선거는 혼전 양상으로 변했고,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이 계속됐다. 성추행 의혹 제기 초반 침묵을 지키던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중반 무어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지난 11일 미들랜드 시티 유세에서는 지지 연설도 했다. 컴퓨터가 무작위로 전화를 돌려 녹음 음성을 들려주는 '로보 콜'(자동 녹음 전화)에 무어 지지 육성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이 덕분에 선거 직전 리얼클리어폴리틱스의 여론조사에서는 무어 후보가 존스 후보를 2.2%포인트 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무어 후보는 이날 개표 초반부터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이런 흐름은 후반에도 이어졌다. 하지만 개표가 87% 정도 진행됐을 때 두 후보의 득표율이 49.2%로 같아졌고, 88%가 개표됐을 때는 역전(逆轉)이 일어났다. 당선이 확정된 존스 후보는 "이번 선거는 품위와 존중에 관한 일이었다"고 했다. 무어 후보는 개표 결과 패배가 확정된 순간에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패배 선언을 하지 않았다.

지난달 '미니 지방선거'로 불린 버지니아와 뉴저지 주지사 선거와 뉴욕시장 선거에서 공화당이 완패한 데 이어 '텃밭'인 앨라배마에서마저 무너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내년 11월 6일 치러지는 중간선거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 NYT는 "민주당은 내년 중간선거 때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긴 주(州) 10곳 등에서 어려운 싸움을 해야 했는데 이번 보궐선거로 민주당이 역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조선일보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막판 적극 지원한 무어 후보가 패배하자 슬쩍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로이 무어로는 선거를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냐"며 "내가 맞았다"고 했다. 원래 무어 후보가 약체여서 패배했다는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원들은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앨라배마에서 또 다른 기회를 맞을 것이다. 결코 끝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내년 중간선거를 기약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앨라배마주 페어필드 출신인 존스 당선인은 1997~2001년까지 앨라배마 북부 지역의 연방 검사를 지내면서 낙태 권리를 지지하고 오바마케어 폐지에 반대하는 등 진보적 성향을 보였다.

[뉴욕=김덕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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