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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연간 출국자 2천만명 넘는데…여권 속 ‘주민번호’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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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작년 출국자 2200만명, 올 2700만명 예상

호텔 등서 메모해도 막을 대책 없어

보이스피싱 전화 등 피해사례도

6개국만 여권에 개인식별번호 수록

2015년 여권법 개정 발의…흐지부지



한겨레

전자여권에 적힌 주민번호, 여권번호 등이 손쉽게 유출될 수 있다며 2008년 시민단체 회원들이 당시 외교통상부 앞에서 전자여권을 리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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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동남아권 호텔에서 근무했던 한국인 ㄱ씨는 현지 직원들이 호텔을 방문한 한류 스타의 여권에서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 따로 메모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뭐하는 짓이냐’ 따져 묻긴 했지만, ‘호텔 규정상 필요한 일’이라는 대답에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ㄱ씨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호텔 숙박할 때 여권을 다 걷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인 주민등록번호를 쉽게 알아낼 수 있겠구나 걱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국으로 여행을 다녀온 ㄴ씨도 찜찜한 기억이 있다. 중국 입국심사 당시 심사관이 여권을 검사하며 “이 번호가 당신 주민등록번호냐”고 물은 뒤 번호를 적어갔다. 의아한 일이었지만 별다른 항의를 하지 못했다. 이후 공교롭게도 보이스피싱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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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관련 범죄가 날로 조직화하는 가운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국인의 개인정보가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에 고스란히 적혀 있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이다. 외국에 가서 숙박을 하거나 차를 빌릴 때 여권을 제시할 일이 잦은데, 이때 여권번호 말고도 국내에서 통용되는 주민등록번호가 통째로 공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 주민등록번호 또는 이와 비슷한 개인식별번호를 여권에 수록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스페인, 타이, 한국 등 6개 국가뿐이다. 미국·캐나다는 국가 차원의 신분증 제도가 아예 없고, 프랑스와 독일은 개인식별기호 대신 10년 동안 사용하는 한시적 신분증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통합형 개인식별번호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 자체도 극소수인 상황에서, 이 정보가 나라 밖으로 샐 수 있는 통로까지 열어두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법 개정 움직임으로도 이어진 바 있다.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여권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삭제하는 여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여권의 본래 용도는 한국 국적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통용되는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법 개정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포르투갈은 ‘국민에게 단 하나의 고유번호를 할당하는 행위는 금지한다’고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을 정도로 개인식별정보를 정부가 일괄 관리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큰 일”이라며 “이를 여권에까지 기재해 해외 유출의 통로까지 만들어놓은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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