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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자동차 쇼룸에 3色 천막… "당신 자신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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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영상 新作 선보인 배정완 "다름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담아"

"거울 속 세상이랄까요? 왼손잡이도 거울로 보면 오른손잡이가 되지요. 다름,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서울 논현동 현대모터스튜디오 1층. 신형 자동차 쇼룸이어야 할 공간에 대형 설치작품이 들어섰다. 배정완(43) 작품 '거울 속 그는 왼손잡이다'. 노랑, 분홍, 파랑 세 가지 색깔의 가늘고 기다란 수직 막대 200여 개가 4m 폭 두 거대한 날개를 감싸 안는 구조의 설치물. 그 위쪽 벽면으로 숲 풍경을 담은 영상이 흐른다. 나선형 길을 따라 태풍의 눈처럼 보이는 곳으로 걸어 들어가면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원색의 막대들이 도미노처럼 빽빽이 서 있는 '숲'은 머리가 어찔할 만큼 착시를 일으킨다. 가장 안쪽 짙고 푸른 공간에 들어섰을 땐 잠시 정적이 흐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때문이다. "빠르고 복잡한 강남 한복판에 나 자신과 만나는 사적인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보는 각도, 걷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색깔을 경험하듯, 사람 안에 존재하는 다름과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죠."

조선일보

200여 개의 수직 막대와 날개로 유목민들의 천막처럼 세운 설치 작품 한가운데에 선 배정완 작가.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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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완은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대)와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뒤 설치, 영상, 공연 무대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해온 작가다. 건축설계를 기반으로 한 공간작업으로 특히 주목받았다. 미술관과 상업공간을 가리지 않는다. 현대모터스튜디오는 설화수 플래그십 건물 루프 톱에 설치한 '은빛 강 건너편에는 너가 있다 하던데'에 이은 작업. 유목민들의 거대한 천막으로도 보이는 설치물 위로 흐르는 숲 영상은 빗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환상적이면서도 명상의 기운을 강하게 뿜는다. "새벽, 한낮, 어스름 녘의 숲 풍경이 반복해서 흐르도록 연출했어요. 인간은 이런저런 잣대로 서로를 한없이 구분 짓고 소외시키지만, 자연의 굴레 안에선 모두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존재라는 걸 상기시키고 싶었죠."

통유리창 안에 설치된 작품은 한밤중 도산대로를 달리면서도 볼 수 있다. "입시교육에 숨 막혀" 고2 때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간 배정완은 "오히려 한국에서 다름에 대한 차별이 더 심한 걸 느낀다"고 했다. "다름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외모, 피부색은 물론 생각의 다름까지 존중하려 들지 않으니까."

배정완은 아르바이트로 여행경비를 벌며 유럽, 아프리카를 방랑했던 20대가 인생의 가장 큰 자양분이 되었다고 했다. "자기 길을 찾는 과정이라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건축판 잡일부터 식당 알바까지 해봤고, 돈 없으면 길바닥에서 잤지요." 마흔 넘은 싱글이지만 배정완은 "내겐 사랑과 예술이 제일 중요하다"며 웃었다. "요즘처럼 미쳐 돌아가는 세상일수록 진짜 사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섯 손가락을 가진 남자가 손가락 네 개 가진 여자를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주는 그런 사랑!" 전시는 내년 1월 28일까지.







[김윤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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