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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광화문·뷰] 정치인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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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미래에 절실한 연금개혁

다수결에 맡기면 잘못된 해법뿐

“정치인 목적, 인기 관리 아니다”

‘오바마케어’ 결단을 생각한다

조선일보

2014년 11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오바마케어(전 국민 건강보험)'와 관련한 전화 회의를 하는 모습. 건보 가입에 따라 발생하는 보험료 부담 등이 큰 반발을 불러 일으키면서 인기가 곤두박질쳤지만 그는 "여론조사 잘 나오려고 대통령 하지 않았다"며 정책을 관철시켰다. /백악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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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안전벨트 착용 규제는 1960년대 말부터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젠 상식이 된 정책이지만 초기엔 격한 반발이 일었다. ‘과태료 거둘 명분’이라는 비난과 안전벨트 의무 장착이 초래하는 비용 증가와 관련한 불만이 많았다. ‘안전벨트 잘라버리기 캠페인’ 같은 거친 역풍을 거쳐 1990년대 들어서야 규제는 자리를 잡았다. 안전벨트 역사를 처음 들은 건 10여 년 전쯤 버락 오바마의 기자회견에서였다. 젊고 열정적이던 대통령의 인기를 추락시킨 ‘오바마케어(전 국민 건강보험)’가 의회를 간신히 통과한 직후의 일이다. “이처럼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사회가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정책이라면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렇게 의원들을 설득했습니다.”

인기는 없어도 국가의 생존에 절실한 정책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 정치의 영역이 열린다. 지금 한국에 가장 시급한 국민연금 개혁이 대표적이다. 연금 보험료를 낼 젊은 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받아야 할 고령자가 증가하는 문제는 급격히 악화해 왔다. 그럼에도 선거를 앞뒀거나 반대가 심하다는 등등 온갖 이유로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 60→40%’로 2007년 조정되고 나서 개편된 적이 없다. 이후 못 본 척 17년이 흘렀고 저출생·고령화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내버려두면 연금 잔고는 약 30년 후 바닥난다.

국민연금 담당 국회의원들은 지금 해법을 찾겠다며 유럽에 간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여러 해 동안 수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답은 나와 있다. 보험료를 더 내거나, 연금을 덜 받거나, 혹은 둘 다 해야 한다. 이 문장을 쓰고 나니 어쩔 수 없이 기분이 나빠진다. 간단한 ‘산수’이자 불편한 진실이다. 얼마 전 발표된 개혁안 초안은 그런데 이해하기가 어렵다. 보험료를 약간 더 내면 연금을 꽤 많이 탄다고 되어 있다. 어떻게 이런 결론이 나왔을까. 알고 보니 시민 대표 492명이 다수결로 정했다 한다.

국민연금 문제는 가입자가 고통을 나누는 방식 아니면 해결할 수가 없다. 개혁안을 내놓았는데 다수가 좋아한다면 오히려 뭔가 잘못됐다고 봐야 옳다. 개인과 사회, 현재와 미래가 상충될 때 대부분 유권자는 ‘나’와 ‘지금’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말을 빌리면 “세금을 여론조사로 정하면 세율은 계속 내려가고 국가는 망하게 된다.” 세금을 연금으로 바꿔 읽어도 뜻은 그대로 통한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정책이 모두 인기를 얻지는 못한다. 어떤 정책은 대다수가, 때론 모두가 반대한다. 먼 훗날 병 걸릴 가능성에 대비해 지금 건보료를 내라는 ‘오바마케어’는 도입 초기 정권을 위태롭게 만들 정도로 지지도가 낮았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가 시위로 마비되고 시위대가 단골 식당을 두 번이나 불 지르는 격렬한 반발 끝에 연금 개혁안을 지난해 간신히 통과시켰다. 그는 최근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여론조사 눈치 보려 정치하는 건 아니다”라며 “정치는 투쟁이자 신념이자 배짱”이라고 했다. 오바마가 한 말과도 통한다. “인기 관리가 목적이면 정치인이란 직업을 택하지 않았겠죠. 욕먹더라도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을 하려고 대통령이 됐습니다.”

오바마케어는 도입 초기 지지율이 30%였다. 당시 뉴욕 지하철에서 옆자리 흑인이 모르는 날 붙잡고 “빌어먹을 오바마케어, 오바마는 공산주의자야!”라고 열을 올려 놀란 적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바마케어에 대해선 취약 계층의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정책 지지율은 최근 60%까지 올라갔다. ‘환자 보호 및 부담 적정 보험법’이 공식 이름인 이 법은 모두가 ‘오바마케어’라 부른다. 정치인이 역사에 이름을 잘 남기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김신영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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