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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인종차별 시달리던 이민 2세, K팝 뮤지컬로 뉴욕 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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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Kpop' 기획자 제이슨 김

K팝 가수 美진출기, 뮤지컬 담아… 뉴욕에서 한 달 이상 매진 행렬

NYT '10월에 볼 만한 공연' 선정

조선일보

"모두에게 열린 듯 보이지만 차별이란 안경을 쓴 미국 사회에 시원한 펀치를 날리고 싶었어요. 동시에 한국인이란 뿌리를 없애버리려 했던 제 어린 시절에 대한 반성문이기도 하지요."

지난가을 미국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큰 인기를 끈 뮤지컬 '케이팝(Kpop)'. JTM 엔터테인먼트라는 대형 연예기획사가 팝의 본고장 미국에 K팝 가수를 진출시키려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았다. 연습생들을 깎아내고 다듬으며 '공장 시스템'같이 찍어내는 시스템을 통렬히 비꼬면서도 동양계에 쉽게 문을 열지 않는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도 날카롭게 꼬집었다.

지난 9월 2주 예정으로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지만 전일 매진되며 열광적인 반응으로 한 달 이상 연장 공연했다.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관객은 배우들과 함께 '케이팝 미국 진출' 전략을 짜면서 미국에 오래 쌓인 차별 등을 경험한다. 뉴욕타임스는 '10월에 가장 볼 만한 공연' 중 하나로 '케이팝'을 꼽았고 할리우드 리포터 등 해외 매체 등도 "중독성 있고 매력적이다.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18명의 배우 등 제작진의 90%가 동양계인데 주류 언론에서 한 페이지를 할애해 극찬하는 건 드물다.

이 작품 원작자이자 기획자인 이민 2세 제이슨 김(김준혁·32·작은 사진)은 최근 이메일 인터뷰에서 "K팝이 세계를 휩쓴다면서도 왜 미국의 주요 시장 문턱에선 무너지고 음반업계를 좌지우지하진 못하는지 항상 의아했었다"며 "아시아계가 섹시하지도 않고 특유의 스왜그(Swag·흥)를 가지지 못한다는 미국 대중의 선입견을 헤집어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지난가을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인기를 끈 뮤지컬‘Kpop’. 18명의 배우를 포함한 제작진 90%가 아시아계다. /Ben Arons·k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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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남성그룹, 걸그룹, 솔로 세 팀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들은 미국 시장에 들어가고자 동양의 악센트를 고치고 미국식 맞춤 인형처럼 외모를 바꾸려 한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갈등한다. 그는 "많은 미국 친구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쏟아지는 반응으로 보면 다행히 뜻이 통한 것 같다"고 했다.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과 뉴스쿨에서 극작을 전공한 제이슨 김은 미국 채널 HBO에서 방송한 인기 드라마 '걸즈(Girls)'와 FOX에서 방송한 '그레이스포인트(Gracepoint)'의 극본을 쓰며 이름을 날렸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는 부분은 제이슨 김의 자전적 이야기다. "열한 살에 이민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김밥을 엄마가 도시락으로 싸주셨죠. 젓가락이 없었고, 저는 한국에서 그랬듯 손가락으로 김밥을 집어 먹었는데 갑자기 학교 식당이 조용해지는 거예요. 애들이 절 보고 '음식 손으로 먹는 이상한 애'라며 비웃기 시작했죠." 그날 저녁 그는 엄마한테 "앞으로 다시는 한국 음식을 싸주지도 말고, 준혁이라고 부르지도 말라"고 소리질렀다고 했다. "아예 한국말을 쓰지도 않았죠. 부모님들이 불러도 모른 척했어요. 철저히 미국인이 되고 싶었죠."

생각을 바꾼 건 2012년 드라마 '걸즈'의 작가로 입성한 뒤다. 드라마가 끝나고 '작가 제이슨 킴'이란 글자가 짧게 스치고 지나갔는데 이튿날 그의 이메일은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어떻게 그 자리에 갔는지, 자신도 해보고 싶다는 등의 조언을 구하는 편지였다. "1초쯤 떠 있던 제 이름을 봤다는 거예요. 그만큼 동양계가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에 부족하다는 얘기도 됐죠. 제가 자랑스러워졌어요. 이 길을 택하는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는 "이 자리를 빌려 어린 시절 저 때문에 마음고생 하셨을 엄마한테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어제도 뉴욕 코리아타운 거리를 걸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김밥이 눈에 보이더군요. 열한 살 꼬마처럼 손가락으로 여러 개를 동시에 집어 우적거렸죠. 최고의 맛이었어요!"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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