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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로힝야난민 취재기]②메인널고나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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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난민 취재기]①난민촌 가는 길···걱정 쫓는 주술 ‘23’

숙소인 시갈 호텔 앞. 전날 어둠에 묻혀있던 해변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그 위로 파란 하늘이 상쾌했다. ‘과연 휴양지구나.’ 눈앞의 풍광을 보며 난민촌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날 첫 목적지는 ‘메인널고나(Mainnerghona)’ 난민촌이었다. 숙소를 출발해 한 시간 반을 달렸다. 왕복2차선 도로에는 주요 교통수단인 릭샤(승객좌석을 연결한 자전거)와 오토릭샤, CNG(오토바이에 승객좌석 연결), 승합차, 버스, 트럭 등이 마구잡이로 엉켜서 달렸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위태롭게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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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탄 승합차의 운전기사는 자동차 경적 위에 아예 손을 얹어두고 쉼 없이 울려대며 달렸다. 운전자 개인 성향이라 하기엔 좁은 도로에 경적소리가 넘치고 넘쳤다. 스치듯 지나거나, 차선을 넘어 마주 달려오는 차량과 릭샤들, 차와 닿을 듯 지나는 사람들. 정신없고 아찔했다.

난민촌 가까이 이르자 도로 좌우로 ‘임시거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집들처럼 남루한 이들이 길을 걸었다. 사실, 난민캠프까지 가는 길에 목격한 방글라데시 현지인의 삶도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지나는 마을마다 북적였다. 마치 연출된 영화의 장면인 듯했다. 난민과 방글라데시인이 섞여 있을 것이지만 “90% 이상 난민이라 보면 된다”는 통역의 설명이다. 겉모습으로 로힝야족과 현지인들을 구분할 수 없었다. 나를 향해 “일본에서 왔냐?”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 좀 더 남루한 행색으로 로힝야 사람일 거라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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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널고나 난민촌. 길가 작은 언덕에 길게 줄을 선 인파들이 보였다. 적십자사와 적신월사 활동가들이 구호물품을 나눠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행렬은 늘 거기 있었던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내려쬐는 땡볕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렇게 서 있었다. 난민촌의 일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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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이어지는 낮은 언덕에 비닐천을 덮어 만든 난민들의 임시거처가 펼쳐졌다. 전체를 조망하는 사진을 찍을 요량으로 흙길 따라 높은 언덕으로 향했다. 난민들의 시선들이 나를 포함한 일행에 꽂혔다. 이 복합적인 시선을 짐작해 봤다. 미얀마에서 고립돼 살던 이들에게 우리의 생김새는 확실한 구경거리였다. 일행이 입은 적십자사 조끼는 도움을 주려고 온 사람이라는 표시였으므로, ‘우리를 도와줄 수 있나?’하는 짙은 호소로도 보였다. 하지만 누구도 가까이와 손 내밀며 구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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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닥다닥 붙은 천막 사이로 난 길에 아이들이 몰려있었다. 낯선 이들의 출몰은 일상의 변주인 듯했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컸다. 눈이 마주쳐 손을 흔들어주면 까르르 웃으며 일제히 집 안으로 사라졌다가는 다시 고개를 살며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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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쯤 걸었을까. 트럭 한 대가 흙을 실어 날랐다. 언덕 위에 일본 적십자사의 이동의료센터의 터를 다지는 중이었다. 로힝야 난민들이 곡괭이로 땅을 골랐다. 작지만 벌이의 기회까지 주는 일석이조의 사업이다. 어디에서 가져오는 것인지 아이들이 자기 몸집보다 큰 나무를 한 짐씩 지고 집으로 향했다. 난민촌을 가르며 지나는 거친 길 위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어디로 무엇을 위해 가는 지 발걸음들이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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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섰다. 난민촌은 한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60만 명 이상이 국경을 넘었다고 하니, 지금 보이는 것이 그중 얼마쯤 될까 가늠할 수 없었다. 난민의 일상이 내려다 보였다. 천막집 사이로 난 가파른 경사로마다 난민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물통을 이고 든 여성과 아이들이 흙 계단을 오르내렸다. 펌프를 이용해 물을 긷거나 몸에 물을 끼얹는 이들도 보였다. 물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일상을 통해 짐작했다. 저 물이 식수가 되고 밥 짓는데 사용될 것이다. ‘안전할까.’ 상하수가 제대로 관리될 리 없다. 바닥으로 깊이 흘러든 물이 다시 펌프를 타고 올라올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작은 언덕들 사이에 호수 하나가 보였다. 하늘은 파랗고 몇 조각의 구름이 떠 있었지만, 호수는 아무것도 투영하지 못했다. 흙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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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배급 현장. 구호품을 수령한 이들이 하나씩 걸어 나왔다. 행렬은 여전했다. ‘토큰’이라 불리는 카드를 손에 쥔 난민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구호품이 줄어들자 조바심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그 틈에 슬쩍 끼어든 누군가는 쫓겨나기도 했다. 난민들은 구호활동가들의 안내에 따라 카드 확인 후 서류에 손도장을 찍고 물품 쪽으로 이동했다. 말린 음식, 천막과 끈 등을 수령했다. 긴 기다림의 끝에서인지, 꼭 필요한 물건을 손에 넣어서인지, 아니면 고마움인지, 여하튼 안도감 같은 옅은 미소가 얼굴에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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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 쪽이 소란스러웠다. “왜 새치기를 보고만 있느냐?”는 말로 이해되는 아우성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를 바라보던 난민 몇이 옆줄에 선 이들과 팔을 뻗어 손을 잡았다. ‘무슨 의밀까?’ 셔터를 누르니 손을 잡는 이들이 몇 더 늘었다. ‘손잡은 난민들, 고난을 함께 극복하려는 의지’라는 사진설명을 떠올렸다. 셔터를 더 힘차게 눌렀다. 확인 차 활동가에 물어보니, 줄 사이로 새치기 못하게 막는 것이라 했다. ‘내가 더위를 먹은 탓일까.’ 피식 웃고 말았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무 설명 없이 이 사진을 보여주면 어떻게 읽힐까? 안 물었으면 민망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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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첫날이라 일정에 욕심을 냈다. 내친김에 노르웨이·핀란드 적십자가 지원하는 현장병원(Field hospital)과 국경을 넘은 로힝야족들이 난민촌으로 이동하기 전 머무는 유엔난민기구의 임시대기지역(Transit reception area)까지 방문했다. 불안하고 불편한 하루하루일 테지만, 군부의 총부리로부터 벗어난 것에 안도하고 감사라도 하는 것인지 카메라가 향하는 곳마다 관심을 가졌고 그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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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가 끝났고 날이 제법 선선해졌다고는 하는데도 낮엔 30도가 훌쩍 넘었고, 그늘 없는 난민촌은 금세 달궈졌다. 뜨겁고 또 따가웠다. 딱히 먹을 것도 없고, 대놓고 먹을 수도 없어서 점심도 걸렀다. 지쳤다. 서둘러 숙소로 가고 싶었다. 상처를 안고 고난의 삶을 살고 있는 난민들을 찍으면서도 나는 내 작은 불편함에 징징대고 있었다. 난민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는 한낱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가. 어쩌면 시혜자의 오만함으로 그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의 진정성은 어디서 오는가.

다시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숙소를 향해 달려가는 승합차 안에서 몽롱한 상념들이 차를 따라 흔들렸다. (3회에 계속)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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