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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수능만점자 도전' 2018 수능, 선배들이 풀어봤다② "얘들아 불수능 맞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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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수능, 선배들이 풀어봤다② "얘들아 불수능 맞더라"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23일 무사히 치러졌다. 포항 지진으로 1주일 연기된 만큼 수험생들에게 특히 잊지 못할 기억이 됐을 이번 수능. ‘불수능’ 이란 단어가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에 오를 만큼 수험생들의 체감 난이도는 만만찮았다. 수능을 치른지 적게는 5년, 많게는 8년 지난 본지 인턴 4명이 직접 수능 문제들을 풀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4명의 인턴 모두 이번 수능이 ‘불수능’이라는 데 동의했다. 본지 인턴 4명은 각각 국문과, 수학과, 영문과 졸업생이 고루 모여있다. 각자 자신있는 전공 과목을 맡아 풀었다. 과연 전공생들에게 이번 수능은 어땠을까. 우선 인턴 4명이 대입 수능을 치를 당시 각 과목에서 받은 성적은 다음과 같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24.5세다. 인턴들이 신상 노출을 꺼려 가명을 사용했다.

▲국어: 아놀드(26·가명), 서울 소재 S대 국문과 졸업
▲수학: 김글로리아(여·26·가명), 서울 소재 S대 수학과 졸업
▲영어: 파이리(여·24·가명), 서울 소재 S대 영문과 졸업
▲한국사: 복순이(여·22·가명), 서울 소재 S대 국문과 졸업

조선일보

배민주 인턴이 무서운 집중력으로 문제를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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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교시 영어>
#응시자: 파이리(여·24·가명), 서울 소재 S대 영문과 졸업
#응시결과: 2012수능 외국어 98점·1등급→2018수능 영어 97점·1등급(메가스터디 예상 수능 등급컷 기준)

‘현역 느낌’ 살리려 배 불러 졸린 상태에서 시험 응시…
‘미드’덕후였다는 점이 ‘자존심’ 지키는 데 큰 도움

아득한 기억을 되짚어보니 2015년에 응시했던 토익시험이 마지막으로 치렀던 공식 영어 시험이었다. 그 이래로 이토록 진지하게 영어 시험에 임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최대한 수험생의 마음에 가깝게 시험에 응시하고 싶었다. 쏟아지는 졸음으로 사경을 헤맨다는 오후 한시쯤 영어 영역을 치르는 수험생의 마음에 공감하고자 저녁 식사를 배불리 먹고 시험을 시작했다.

"듣기 평가를 시작하겠다"는 익숙한 음성이 들리고 1번부터 17번까지 차례로 문제를 풀었다. 예상보다도 더 수월했다. 방학 때 영어 공부를 핑계 삼아 섭렵했던 각종 미드와 영드의 주인공들이 기억을 스쳤다.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지만 그래도 괜히 스스로가 대견했다. 드라마로 익힌 리스닝 실력이 잔존해있음을 느끼고 왠지 모를 뿌듯함도 느껴졌다.

이후 18번부터는 본격적으로 독해 문제가 시작됐다. 18번부터 27번까지는 내용이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묻는 문제나 주제, 주장, 심경 등을 묻는 다소 평이한 난이도의 문제가 출제된다. 일부러 오답을 유도하기 위해 문제를 '꼬는' 문항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다음 등장하는 28번은 문법 지식을 묻는 3점짜리 문항이다. 문법 문제는 관계대명사 What의 쓰임이 옳은지를 묻는 내용이 출제됐다. What 뒤의 문장이 3형식을 갖춘 완전한 문장이기에 비교적 어렵지 않게 오답을 골라낼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번해 수능 영어 영역의 난이도에 대해 "평이했으나 변별력은 갖췄다"고 평했다. 영어 영역에서 변별력을 가르는 문제는 단연 '빈칸 추론' 문제다. 31, 32, 33, 34번 총 4 문제가 고난도 빈칸 문제로 출제됐다. 31번에 처음 등장한 고난도 빈칸 문제를 접하는 순간 아득함과 동시에 반가움이 몰려왔다. 지문에 등장한 '아포칼립스'라는 영화를 난생 처음 접한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고, 영국 작가 '조지프 콘래드' 라는 익숙한 이름의 등장에 반가웠다. 낯선 주제를 접했을 때 수험생들이 느낄 이질감과 생경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 32번부터 35번까지의 문항은 변별력을 주기 위한 출제 의원의 의도가 엿보였다. 앞선 문제들보다 단어의 난이도도 눈에 띄게 상승했고, 빈칸에 들어가는 문장 또한 훨씬 추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2012년 현역 당시와 비교해 변화가 있었다면, 시험에 임하는 인턴의 '연륜'이었다. 당시에는 절박한 마음으로 "재수만은 피하겠다"며 두 눈을 켜고 문제를 풀어내는 데에 급급했다면 지금은 '인공지능'이라는 주제를 보고 인간의 미래에 대한 심오한 걱정까지 곁들이는 여유를 보일 수 있었다.

굳은 머리를 굴려가며 70분의 사투끝에 얻은 최종 점수는 97점. 우습게 보고 눈대중으로 풀었던 31번 빈칸 문제가 원흉이었다. 영문학 전공자의 자존심은 어렵사리 지켜낼 수 있었지만 2012년 당시 받았던 원점수 98점보다는 하락한 결과였다. 23일 이준식 수능 출제 위원장에 따르면 처음으로 절대평가를 적용해 실시했던 이번 시험 영어영역 1등급 비율 예측 범위는 7%다. 직접 시험을 치러본 결과, 실제로도 난이도가 꽤 평이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조선일보

고등학교 때 역사선생님을 떠올리며 한국사 문제를 풀고 있는 노우리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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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교시 한국사>
#응시자: 복순이(여·22·가명), 서울 소재 S대 국문과 졸업
#응시결과: 2013수능 국사 47점·1등급, 근현대사 45점·1등급→2018수능 한국사 47점·1등급(메가스터디 예상 수능 등급컷 기준)

“몇몇 문제는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상식’이었다”
“잘생긴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 덕분… 조만간 찾아뵐 것”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한국사 영역은 수능 응시 당시 국사, 근현대사, 세계사 세 과목을 응시한 경험이 있는 자칭 '역덕(역사덕후)' 인턴이 풀어봤다. "잘생긴 역사 선생님의 얼굴에 홀려 어쩌다 보니 '역덕'이 되어 있었다"고 밝힌 그는 시험지를 받아들고 "이 정도 문제는 눈으로 풀어보겠다"며 자신만만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3번 문제에 이르러 인턴은 조심스럽게 필기구를 달라고 부탁했다.

1번 문제 속 '반달 돌칼'과 '고인돌'의 모습을 보는 순간, 둔기로 써도 될 정도로 두꺼운 국사책에 대한 향수가 피어오르는 듯 했다. '비파형 동검', '주먹도끼' 등 익숙한 유물들 옆에 '청동기', '신석기' 등의 시대 구분을 적어내려가며 무엇인지 모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시련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3번 문제는 지문이 특정하는 이가 '원효대사'임을 찾아내고, 원효대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골라내는 내용이었다. 대학시절 내내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템플스테이'는 갔어도 '나무아미타불'은 외친 적이 없었던 터라 여러 보기를 놓고 고민해야 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져 뒤에 있는 문제의 삽화를 보며 한참 시간을 죽이다 왠지 모르게 낯익게 느껴진 화쟁 사상과 아미타 신앙을 골라냈다.

근현대사를 출제하는 10번 이후로 진입하자 고종, 안중근 등 익숙한 인물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공부의 대상이 아닌 상식의 영역이 되어버린 문제들을 툭툭 풀어넘겨가니 어느새 20번을 풀고 있었다.

마지막 문제를 풀고 펜을 내려놓는 순간 문득 떠오른 건 원효대사의 '해골물' 설화였다. 하필 헷갈려 마지막까지 끌어안고 있던 문제가 원효대사 관련 문제이기도 했고, 5년 전 수능 시험을 치룰 때 모르는 문제를 앞에 놓고 손을 떨고 샤프 뒤끝을 씹어댈 정도로 초조해 했던 기억이 나기도 했던 것이 이유였다. 같은 수능 문제지를 받고도 푸는 마음가짐에 따라 보이는 건 아주 많이 달랐다.

인턴의 수능 한국사 시험 최종 점수는 47점이 나왔다. 인턴은 "역덕의 체면은 지켰다"면서 "좋아하는 선생님께 질문이라도 하나 더 붙여보려고 시작한 역사 공부의 추억을 아직까지는 잘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배민주·노우리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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