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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우리 아이들을 돈만 버는 바보로 만들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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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만 충실한 월가 방식은 젊은이들을 성장시킬 수 없어
인간의 발전 없이도 사회 돌아가지만 그런 사회가 과연 옳은걸까
교육.학교 개혁 통해 변화 꿈꿔야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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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어른으로 성장하기
폴 굿맨 / 글항아리
고생스런 입시에서 벗어난다 싶었더니 대학은 취업을 향한 또다른 전쟁터고, 취업만 하면 '장밋빛 인생'인 줄 알았더니 고용 불안, 집값 등 고민은 끝도 없다. 이같은 청년 문제들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해결의 기미도 보이지 않을까. 취업 등 청년 문제가 심각해지면 폭력 시위를 동원하며 저항하는 유럽의 몇몇 나라와 달리 우리는 보통 개인적 책임으로 돌린다. '노력이 부족해서' '흙수저라서' 등등의 이유가 그런 것들이다. 청년 스스로뿐만 아니라 사회적 시선도 그렇다. "나 때는 더했다" "요즘 것들은 배가 불렀다"는 말은 여전히 통용되는 문구다.

그런데 기원전 수메르 시대의 점토판에도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개탄이 쓰여 있듯이, 세대간 갈등은 어느 시기,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했다. 미숙한 청년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당연히 열세이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힌다는 판단이 서면 그들은 여지없이 지탄의 대상이 됐다.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자 비평가인 저자는 몇몇 젊은이와 대화를 하던 중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다"며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낭비로 여기는 것을 보고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삶은 계속되고, 세상은 다음 단계의 삶을 응원하리라는 확신이 이 책이 출간된 1960년대 미국 청년들에게는 없었고, 이는 현재 한국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는 고상한 목표, 노력, 가치 있는 업적을 이룰 잠재력을 지닌 젊은이들을 일찌감치 체념하게 만드는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원인으로 본다.

한번 따져보자. 청년 문제가 정말 다른 세대와 분절된 그들만의 문제일까. 대부분의 청년들은 대안 없는 시스템을 참고 견디고 있다. 스스로를 흙수저로 계급화하고, 'N포 세대'로 정의하면서 말이다.

사회 시스템에서 일탈된 한 예로 '비행 청소년'을 들어보자. 많은 학자들이 그 대책으로 그들에게 소속감을 주는 것으로 그들을 '사회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같은 '사회화'가 전혀 무가치하며, 오히려 그것이 비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청년'이라는 세대가 주목받는 사회는 이미 그 자체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과연 이 사회는 소속감을 가지고 사회화할 가치가 있을까'라는 것이 저자의 질문이다.

저자는 사회화 기관인 학교와 기업, 정부 체제가 무관심, 무기력, 냉소주의로 가득하다고 본다. 사회 구성원들은 시스템 속에서 '쥐 경주'를 하듯 내달린다. 이 경주에서 앞서거나 뒤처지든, 아니면 경주에 참가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든 부조리한 사회는 젊은이를 '바보'로 성장하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1960년대 초판 출간 후 미국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신좌파의 고전이자 여전히 손꼽히는 스테디셀러다.

저자가 바라보는 현실은 풍요롭지만 부조리한, 사람이 낭비되는 사회다. 사회의 부는 팽창하고 중산층은 늘어난 듯 보이지만, 평균 수준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이들은 사회 밖으로 밀려난다. 조직화된 사회는 조직 내 인간의 주체성을 상실하도록 조장하거나 방임한다. 그 속의 사람들이 자기 역할만 수행한다면, 발전도 퇴보도 하지 않아도 시스템은 문제없이 굴러가듯이 말이다. 그는 "자본주의에 충실한 매디슨가, 월가의 방식은 젊은이를 성장시킬 수 없다. 그러나 사회는 개인의 성장 없이도 분주하게 돌아간다"고 꼬집는다.

이 때문에 저자는 교육과 학교 개혁에 주목했다. 사회가 개인의 특성이나 능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 구성원 역시 이에 무감각해진 가장 큰 배경은 교육에 있다고 봤다. 특히 교육이 어린이들을 기존의 사회적 역할에 적응시키고 역할놀이에 순응하게 하려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고 비판한다.

개인의 능동적 태도와 일자리, 교육 및 학교 개혁 등을 통한 사회적 변화를 꿈꾼 그의 주장은 당시 무정부주의자에게도 영감을 줬을 정도로 급진적 면이 있지만, 아이들을 '돈버는 일밖에 없는 바보'로 키워내는 우리사회에 가하는 따끔한 일침이기도 하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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