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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정태명의 사이버 펀치]<38>당신, 부끄러운 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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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당신, 내가 누구인 줄 알아?” 교통신호 위반자를 단속하는 경찰을 윽박지르는 소리가 길을 건너고 있던 우리 귀에까지 들린다. 엄마 손을 잡은 아이가 의아해 하며 묻는다. “엄마, 저 아저씨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나 봐.” 권력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의 눈에 기성세대의 부끄러움을 들키고 말았다.

금융권과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 이른바 '낙하산 인사'가 금융 적폐로 지목돼 언론에 오르내린다. 정상으로 입사한 직원마저 고위직 친지가 있다는 이유로 좌불안석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적폐로 치부되는 낙하산 인사가 우리 주변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 늘 있어 온 일이지만 대통령 선거 후보자 캠프 공로자가 주인공인 보은 인사, 권력층과 가깝다는 이유로 승진하는 정실 인사가 심심치 않게 재현되고 있다. 과거 권력에는 범죄가 되고 현재 권력은 괜찮다는 논리라면 '이장폐천(以掌蔽天: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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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권자와 친하다, 동창이다, 동향이다'라는 사사로운 관계 기반의 정실 인사는 분명 적폐다. 용어도 모르고 개념도 없는 인사가 임명되는 낙하산 인사도 분명 적폐다. 그러나 주인 없는 공공기관과 규제가 발목을 잡는 기업에서의 권력형 부정 인사 사례는 도를 넘는다. 퇴직 공무원의 직무 연관성 취업을 금지한 공직자윤리규정은 정치인의 낙하산 인사 탈출구가 됐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권력에 의해 행해지는 일련의 과정에 연루된 당사자들이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점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부정 인사는 신뢰 붕괴의 주범이며, 경쟁력 약화를 가속시킨다. 신뢰는 예측 가능한 사회만이 누릴 수 있지만 부정 인사가 그 예측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또 다수의 예측을 배신한 인사는 조직과 구성원의 미래를 혼란시키고, 일부는 권력에 줄을 대느라 분주해진다. 많은 유력 인사와 지식인이 대선 캠프에 줄을 서는 이유다.

전문성이 결여된 낙하산은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보여 줘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말미암아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첫 번째로 하는 일은 조직 개편과 목표 재설정이다. 발전 계기로 인력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는 낙하산의 주장은 또 다른 청탁과 권력에 의지하는 일 처리를 정당화하려 한다. 정의와 평등이 상실되고 낙하산이 좌충우돌하는 사이에 조직, 구성원, 국민 모두가 쓸데없는 피해를 본다.

정실 인사는 '내부 반목'과 '인사철 줄서기'를 조장한다. 낙하산의 비전문 평가에 대한 불안은 인사권자의 선호도가 실적에 우선하도록 한다. 정상 발전은 궤도를 이탈하고, 이 정도면 정확한 평가 기반의 조직 운영은 요원해진다. 불만 포화 상태인 구성원들은 낙하산이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우울한 시간을 보내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낙하산이 100% 불량품은 아니다. 때로는 신선한 혁신과 변화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소수의 성공 사례로 낙하산 인사를 변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인사는 한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늠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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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에서의 정의와 평등 구현을 위해 4차 산업혁명에 참여한 컴퓨터 고용을 제안한다. 사람은 그놈의 '정' 때문에 할 수 없지만 컴퓨터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AI) 학습 기반 인사 시스템으로 예측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서 신뢰의 단초를 풀어야 한다. 우선 인사권자가 자기 주관식 평가를 포기하고 컴퓨터가 출력하는 결과를 시행하는 것이야말로 정의롭고 평등한 미래의 문을 여는 지름길이다.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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