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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팀장칼럼] 코스피 명함 값, 코스닥 명함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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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얼마 전의 일이다. 함께 저녁에 초대받은 인사 중 한 분이 명함을 건네 무심코 받았는데, 생소한 이름의 회사였다. 저녁 전 다른 참석자로부터 미리 상장사 오너라고 언질을 받았던 터라, 코스닥 상장사를 운영하나 보다 생각했다. 코스닥 상장 기업이 워낙 많다 보니 낯선 회사 관계자들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때 명함의 원래 주인이 일어서더니 얘기했다. “우리 회사는 코스피 상장사입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는 듯했다. 처음 보는 이에게 내 생각을 읽혔다는 느낌은 불편하면서도 찝찝하고, 민망했다. 그는 “괜찮다”라고 했다. 회사 이름에 영어가 많이 들어가 있다 보니 사람들이 가끔 코스닥 상장사로 오해하기도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다시 한번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이 상황에서 ‘괜찮다’라는 표현은 상대방의 실수를 보듬어주는 표현이었다. 저녁을 먹는 내내 나는 속으로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계속해서 되뇌었다.

내 잘못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 건 며칠 후였다. 상장사도 여럿 인수해본 나름 잘나가는 경영자인 지인을 만나 물었다. 지인은 콕 집어서 지적해주지는 않았지만, 당장 명함 값부터 다르다고 했다.

코스닥 명함 값은 50억원에서 100억원, 코스피는 코스닥의 1.5배 수준이라고 했다. 명함 값이란 경영권 프리미엄을 얘기한다. 지분을 사고자 하는 측이 상대방에게 지분 가치 이외에 얹어주는 웃돈이다. 코스닥 시장이 많이 정화되면서 매물이 줄어든 덕에 코스닥 명함 값도 1~2년 사이 2배 가량 뛰기는 했으나, 여전히 코스피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게 지인의 얘기였다. 25억~50억원의 웃돈을 더 지불하고도 코스닥 상장사로 오해를 산다면, 나라도 유쾌하지는 않겠다 싶었다.

최근 셀트리온이 코스피로의 이전을 결정하자 ‘그럴 줄 알았다’부터 ‘일종의 배신이다’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분위기야 어떻든 셀트리온 입장에서 보면 결과는 성공적이다. 이달 18일 장 중 셀트리온 주가는 올해 3월말 기록했던 최저가보다 139% 상승했다. 코스피 이전이 마무리되고 셀트리온이 외국인과 기관이 주로 투자하는 코스피200지수 구성 종목에 포함되면, 투자자들의 바람대로 주가는 더욱 날개를 달 가능성도 있다.

기업들의 코스닥 탈출 러시를 탓할 수는 없다. 큰 기업 입장에서는 코스피200지수 편입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떨쳐내기 어렵다. 한국거래소가 카카오 이전 당시 예외적으로 코스닥 상위 종목들을 코스피200지수에 합류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번거롭게 혜택을 받기보다는 짐을 싸는 게 속이 편하다. 작은 기업들도 코스피 이전을 원하기는 매한가지다. 상대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당할 가능성이 크지 않고, 희소성이 있는 데다가, 기업을 유지하기도 편하다는 이유에서다. 쉽게 말하자면 가고 싶은데 못 가는 형국이다.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이야기하면서 많이들 미국 나스닥을 거론한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인텔 등도 나스닥에서 잘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훗날은 모르겠지만, 당장 코스닥이 미국 나스닥을 따라가기는 무리다. 이달 18일 기준으로 코스닥 시장의 전체 규모는 230조5700억원이다. 셀트리온이 나가면 이마저도 22조원 이상 줄어든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모든 기업을 4번 팔아야 애플(940조원)을 살 수 있다. 나스닥 전체 규모는 1경1632조원에 이른다.

애벌레 캐릭터 ‘라바’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투바앤이라는 회사가 있다. 오는 2019년 상장을 목표로 하는 회사다. 처음 상장 계획을 밝혔을 때만 해도 당연히 코스닥 시장을 염두에 뒀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회사는 돌연 코스닥 시장이 아닌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하겠다고 밝혔다. 상장업계 관계자들은 유망 벤처기업이 처음부터 코스닥보다 코스피를 선호하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고 전한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으나, 코스닥 시장 활성화 측면에서 본다면 투바앤의 케이스는 최악이다. 우량한 집 토끼를 잡아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될성부른 나무를 떡잎 때부터 키우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정 기분이 나쁘다면, 잘 키워서 분가시킨다고 생각해도 좋다.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등이 모여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고민한다고 한다.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 상장 요건을 손 봐 차별화를 꾀하는 방법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갈 이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나가기 마련이다. 절이 싫다는 중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처음부터 절에 들어오지 않으려는 중은 없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코스닥이 산다.

하진수 금융증권부 증권팀장(hj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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