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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사설] 文 대통령 '그래도 脫원전' 누굴 위한 고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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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조속히 재개하는 한편, 탈원전 등 에너지 전환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471명 설문 조사 중 한 문항에서 원전 축소를 원한 비율이 8%포인트 더 높았다는 것이 그 근거다. 원전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 471명의 8%면 38명이다. 이것으로 국가 경제, 안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과격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문 대통령은 "반경 30㎞ 이내 수백만이 거주하는 지역에 13기 원전이 밀집해 있고 2기가 더해지게 됐다"며 "원전 안전 기준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층지대의 활동과 지진에 대한 연구도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다. 원전의 안전 기준은 아무리 강화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지진만으로 사고가 난 원전은 단 1기도 없다. 후쿠시마 사태 때도 쓰나미 발생 이전에 지진만으로는 일본 모든 원전이 문제가 없었다. 신고리 5·6호기의 철근 밀집도는 규모 7.5 지진에 견디도록 설계된 롯데월드타워의 20배다. 안전 문제를 극단적으로 과장하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우를 범한다.

문 대통령은 "다음 정부가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도록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원전은 더 이상 짓지 않고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를 4.7%에서 20%로, LNG 발전을 18.8%에서 37%로 늘리겠다고 한다. 국토가 좁고 자연 조건이 불리한 우리에게 태양광·풍력은 태생적 한계가 있다. 땅이 넓은 호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州)가 2020년부터 신재생에너지 기업에 주던 보조금을 폐지키로 한 것은 가정 전기료가 10년 새 63%, 71%씩 올라서였다.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LNG 발전은 에너지 안보를 사상누각으로 만들 수 있다. 정부는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전기요금이 인상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무책임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실제 원전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다음 정부부터"라고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 임기 중에 신고리 외에 4기의 원전이 착공될 예정이었다. 4기 모두 중단하면 그 부정적 영향은 10년 정도 후에 우리 경제와 국민 생활에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임기 후 일이라고 치부한다면 이 역시 무책임하다.

문 대통령은 신고리 건설 재개와 관련해 "공사 중단 공약을 지지해주신 국민도 공론화위 권고를 대승적으로 수용해달라"고 했다. 지난 대선은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졌다. 탈원전 공약 때문에 문 대통령을 찍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거의 대부분 국민은 그런 공약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은 전면 중단한다"고 했다.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가 마지막 원전이라면 심각한 일이다. 이 사실 자체로 원자력 산업은 미래가 없어진다. 어떤 학생이 원자력을 공부하겠나. 관련 대학과 연구소는 고사(枯死)할 수밖에 없다. 수출은 물론 기존 원전의 안전을 관리할 인력 수급도 구멍 날 것이다. 안보의 기틀인 핵 연구도 사실상 전면 중단된다. 문 대통령은 이 뒷감당에 대한 검토는 하고 있는가.

많은 역대 대통령들이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깨끗이 인정하고 문제를 바로잡기보다는 고집으로 결정을 미루다 후유증을 키우곤 했다. 국민에게 해를 끼치는 아집을 '소신'인 양 밀어붙여 나라에 입힌 피해도 컸다. 지난 수십 년간 기적적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온 원전을 잘못된 근거로 흔들려는 것은 대통령사(史)에 남을 오점이 될 수 있다. 그 전에 문 대통령이 용기를 발휘해주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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