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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책과 미래]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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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제가 책을 쓸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 사람을 한 달에 몇 번 만난다. 당연하다. 욕심을 버리고 도움을 조금 받으면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 서점에 나가서 살펴보면 안다. 세상 모든 것은 책이 된다. '이것까지 책으로….'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살아오면서 배우고 계획하고 시도하고 깨달은 것은 모두 책이 된다. 인생은 끝없이 솟아나는 상상의 샘물이고, 마르지 않는 영감의 바다다. 삶의 한순간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궁한 이야기의 파도가 휘몰아친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는 고작 가로세로 1m의 땅으로, 자연의 역사 전체를 담아내지 않았는가.

우리 안에는 삶의 바다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천재가 숨어 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조잘대면서 한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제지를 받고 입을 다문 경험이 누구나 있지 않은가. 한때는 모두 타고난 이야기꾼이었으나 호기심을 잃은 후 언어를 잃고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절실함이나 갈망을 계기로 잠들었던 이야기 재능을 깨울 수만 있다면, 이야기꾼이 되는 것은 아무 문제없다.

이야기꾼이 되는 데 나이는 별로 상관없다. 박완서는 40세 늦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40년 넘게 활동하며 22권이나 책을 썼다.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개척자인 마쓰모토 세이초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41세에 데뷔했지만 장편 약 100편에 중단편 약 350편을 남겼다.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던 시드니 셸던은 54세에 소설가로 변신한 후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남겼다.

하지만 내 안에 거인이 잠들어 있더라도, 그리고 그 거인이 잠에서 깨어났다 할지라도 어떤 사람도 첫걸음을 동시에 두 방향으로 내디딜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에 한 걸음씩만 걸어서 목표에 이를 수밖에 없다. 사소한 한 걸음을 꾸준히 모으지 않는다면 아무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천천히 기어다니면서 팔다리에 힘을 붙이지 않은 갓난아기가 일어설 수 없듯, 중간을 건너뛰고 한 번에 벌떡 일어서려는 사람은 이야기를 끝내지 못한다.

불행히도 당신이 책을 쓰려고 할 때 우선 배워야 할 기술은 표현이 아니라 절제다.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떠올려 왔고, 지금도 가슴속에서 분출하는 온갖 이야깃거리 중에서 가장 소중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한 후에야 집중할 수 있고, 집중한 후에야 생각할 수 있으며, 생각한 후에야 책을 쓸 수 있다. '대학'에서 "먼저 할 바와 나중에 할 바를 알면, 도에 가까워진다(知所先後, 則近道矣)"고 했다. 무언가 쓰기 전에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이것뿐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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