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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인사이드칼럼] 원전, 여론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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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공론화 절차가 종료돼 이제 공이 정부로 넘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론화위원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존중해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만일 공론조사 결과 찬반 비율 격차가 오차범위보다 크게 나왔다면 공론화위가 찬반 어느 한 쪽을 정해 권고안을 작성하고 정부는 이에 따르면 된다. 하지만 오차범위 내로 결과가 나왔다면 공론화위가 방향을 정할 수 없어 정부가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문제는 건설 중단이냐 재개냐 어느 쪽으로 결정이 나든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건설 중단의 경우 3조원에 가까운 매몰 비용이 발생할 뿐 아니라 부산·울산·경남 소재 800개 기업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3만여 명에 달하는 국내 원전산업 종사자들의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쌓아온 '원전 강국'의 공든 탑이 무너져 수출 기회도 상실될 우려가 있다.

건설 재개의 경우 정부의 국정 운영 동력이 약화될 뿐 아니라 탈원전 추진 가도에도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20일 공론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부산과 울산 지역 탈핵단체들이 건설 백지화를 외치며 농성을 벌이는 것을 보면 건설 재개로 결정 날 경우 반원전 진영의 반발이 거세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왜 이다지 문제가 복잡해졌는가. 애당초 국가의 중대 정책을 비전문가 집단인 시민참여단의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발상 자체부터가 잘못됐다. 이는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고 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신고리 5·6호기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38개월의 심의를 거쳐 최종 의결한 사항으로 법적·절차적 하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탈원전을 급격히 추진하는 것은 아니며 긴 호흡을 갖고 준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향후 6기의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는 것은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다. 그런데 구태여 공정률이 30%에 육박하며 이미 막대한 돈이 투입된 원전의 공사 중단 여부를 여론의 심판대에 올려놓아 서둘러 결론을 내려 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여론몰이 식으로 정책을 결정하려고 했다면 왜 막대한 국가 예산을 써가며 전문가를 양성하고 연구개발을 해왔는가.

원전정책은 여론에 얽매여 결정할 게 아니다. 정부가 중심을 잡고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다. 여론은 사고나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크게 출렁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는 오일쇼크 영향으로 국가마다 에너지 안보가 중시됐기 때문에 원전 찬성 여론이 우세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하자 세계적으로 반원전 여론이 단기간에 급속히 높아졌다. 그러나 10년 후에는 친원전 여론이 다시 득세했다. 지구온난화와 유가 급등, 러시아의 대유럽 가스 공급 중단에 따른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 증대가 영향을 미쳤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후 미국에서는 친원전 비율이 낮아졌지만 그렇다고 원전 르네상스 움직임이 즉각 후퇴할 정도는 아니었다. 원전이 에너지 안보나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라는 인식이 미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갤럽 인터내셔널 어소시에이션 조사에 따르면 영국은 후쿠시마 사고 전인 2010년 47%였던 원전 찬성 비율이 사고 후인 2011년 6월에 36%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에는 50%로 다시 크게 회복됐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후 친원전 비율이 30%포인트 감소했지만 그래도 60% 정도를 유지했다. 한국은 후쿠시마 사고 이전 65%였던 친원전 비율이 사고 직후 64%로 약간 낮아졌으나 경주 지진 이후 크게 떨어졌다. 주요국들의 사례를 볼 때 향후 대형 사고나 자연재해가 발생하지 않는 한 후쿠시마 사고로 악화된 원전에 대한 여론은 점차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에너지 안보나 경제성, 환경성 등의 중요성이 증대될 때 그렇다.

정부는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정책을 끌고 갈 게 아니다. 제반 여건을 종합해 시나리오를 짜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온기운 객원논설위원·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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