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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세상을 향해 활을 쏘다…재불 작가 김순기 개인전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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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색따기 과녁`(1977~1988년).


프랑스 파리에서 자동차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 달리면 나타나는 비엘메종. 시골 농가에 혼자 사는 김순기 작가(71)는 과녁을 정교하게 그린다. 대학 시절 전통 활쏘기를 배운 그는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에도 활을 놓지 않았다. 활을 쏘지 않을 때는 과녁을 그리며 심신을 수련한다.

정해진 자세와 법도에 따라 꾸준히 해온 활쏘기는 자연스럽게 작가의 예술 행위이자 삶의 한 부분이 됐다. 혼신을 다해 과녁을 그리고 있으면 잡념이 사라진다. 그가 활쏘기 과정을 담은 작품으로 3년 만에 개인전 '일화(一畵)'를 서울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열고 있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김 작가는 "마음이 불편하거나 얼굴을 찡그리면 활을 제대로 쏘지 못해 몸에 멍이 든다"며 "단전호흡을 통해 자연적인 기(氣)를 받고 바른 마음으로 활을 쏴야 한다"고 했다.

전시 제목 '일화'는 중국 청나라 승려이자 화가 석도(石濤)의 화론에서 따왔다. 노자(老子)의 영향을 받은 석도는 최초의 그음이자 모든 화법의 근본인 일획(一劃)을 근간으로 삼았다.

일획이야말로 모든 존재의 근본이며, 만상의 근원으로 생각했다. 김 작가는 니스대학 재학시절 학위 주제로 석도의 화론을 정하고 깊이 연구했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장자, 노자를 읽고 놀았다"며 "빈 마음으로 그린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1975년부터 1985년까지 직접 활을 쏘는 모습을 담은 영상 작품 '일화'를 비롯해 직접 그려 과녁판으로 사용했던 과녁 회화, 드로잉 작품들을 함께 선보인다. 수십 년에 걸친 작가의 활쏘기 작업을 보다 심도 있게 제시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 '떠돌아다니는 행상인 2017(Colporteur 2017)'도 공개했다. 장인들이 손수 만든 옛 살림도구들을 가득 싣고 돌아다니는 트럭 행상이 미술관 마당에 서 있다.

작가는 "행상은 민중문학의 원초이자 우리 삶의 바탕이었다"며 "예술이 과연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사진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시간과 언어유희, 삶과 예술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를 심층적으로 다뤄왔다.

전시를 기획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특정한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자유로운 삶의 예술을 실천한 작가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라며 "진솔한 삶과 맞닿아 있는 작품들은 오래도록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여에서 태어난 작가는 서울대 미대 졸업 후 1971년 프랑스 국비장학생으로 유학가 니스국립장식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프로방스대학교와 니스대학교에서 기호학, 철학, 미학 등을 공부했다. 27년째 마르세유 고등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전시는 내년 2월 25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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