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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저소득층 직격탄…소득주도성장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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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주도성장의 역설 ◆

매일경제

#1. 20일 오전 이른 시간에 찾은 인천 서구 심곡동의 한 PC방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업주 정호영 씨(가명)가 오전 4시부터 9시까지 영업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24시간 영업'의 대명사 PC방이지만 정씨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폭이 높은 수준에서 결정되자 더 이상 야간영업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됐다. 그는 아르바이트생 없이 아내와 둘이서만 가게를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정씨는 "내년엔 주휴수당과 퇴직금을 포함하면 시급 9000원 정도는 줘야 하는데 어차피 버틸 수 없을 것"이라며 "야간 손님 12명 이상이 계속 아침까지 있어야 겨우 적자를 면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 서울 관악구에서 동네 의원을 운영 중인 의사 김창모 씨(가명)는 최근 직원(간호조무사) 4명 가운데 신참 1명을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는 "4대 보험을 빼고 내년에 막내 월급이 20만원 올라 175만원이 된다"며 "차라리 월차를 줄이고 직원 3명에게 월급을 15만원씩 올려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고 말했다. 그는 "야간 근무가 많은 큰 병원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힘들어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문재인정부 '소득주도 성장'이 결과적으로 정책의 핵심 수혜자인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빼앗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서민과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 '소득 증가→소비 증가→생산·투자·일자리 증가→경제 성장'의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이론과 달리 현실에서는 당장 생계가 어려운 음식점·편의점·PC방 등 자영업자들과 동네 의원마저 선제적으로 고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가 아닌 내년에 임금이 오르더라도 업주들이 선제적으로 고용을 조정해 인사관리를 하는 것"이라며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소득이 증대돼 경기가 살아나고 지출이 늘게 되는 '소득주도 성장'은 시간이 지나야만 기대할 수 있는 후행 효과"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고용주가 복지 혜택을 축소하거나 인력을 감축하고,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방식 등으로 대응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저임금 대폭 인상 소식이 알려진 지난 6월부터 저소득 근로자 비중이 높은 숙박·음식업 고용이 석 달 연속 감소했다.

계속 늘기만 하던 자영업자 수도 지난달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매일경제가 각각 회원 수 9만여 명과 6만5000여 명을 보유한 PC방 창업 인터넷 카페를 살펴본 결과 최저임금 인상폭이 발표된 7월 16일 이후 이달 20일 오전까지 67일간 올라온 PC방 매매 글이 모두 1288개로, 발표 직전 같은 기간(5월 10일~7월 15일) 게시된 946개보다 36% 이상 늘었다.

정부가 내년에 3조원의 나랏돈을 풀어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인상폭만큼 지원해 해고를 막겠다는 정책을 내놓았지만 '사후약방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시영 기자 / 김세웅 기자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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