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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팽팽한 실 감고 걸고···연싸움 매력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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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0일 열린 친선 연날리기 대회

60대 이상 참가자들 방패연으로 실력 다퉈

“연싸움 국가무형문화재 인정 받았으면”



대중가요에 나오는, ‘동네 꼬마 녀석들’이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 위에 모여서’ 겨울에만 연을 날리던 때는 지났나 보다. 요즘엔 동네 어른들이 더운 줄도 모르고 바닷가에 모여서 한여름에도 연을 날린다니 말이다. ‘할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것도 아니고 구입한 것도 아닌, 본인들이 직접 만든 방패연을 날린다. 그냥 날리지 않고 연싸움을 벌인다. 지난 10일, 매주 한 번씩 연싸움 삼매에 빠져든다는 이들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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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0일 인천 영종대교 밑 운염도 갯벌 매립지에서 연싸움(방패연 끊어먹기)을 벌이고 있는 대한연협회 서울·인천지역 회원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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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종대교 밑 운염도 갯벌 매립지. 날은 흐리고 미세먼지까지 기승인데도, 드넓은 매립지 복판으로 10여대의 차량이 모여들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매주 모여 연싸움을 벌이는 동호회 회원들이다.

25명의 연싸움꾼이 참가한 이날 모임의 정식 이름은 ‘대한연협회 경인지역 친선 연날리기대회’다. 연날리기 대회라 부르지만 실은 연싸움(연 끊어먹기) 대회다. 전통 연싸움은 줄 끊기 싸움인데, 전통적으로 방패연만을 사용한다. 움직임이 단순하고 반응이 늦은 가오리연에 비해, 방패연은 민첩하게 다양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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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모 얼레’를 들고 연싸움에 나선 회원.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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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직접 만든 연으로 경기 ‘자부심’

벌판에 설치한 햇빛가리개 밑, 긴 식탁에 회원들이 모여앉아 막걸리를 곁들여 점심식사를 하는 가운데, 우현택(57) 연협회 회장이 말했다. “이번주 친선대회엔 경인지역 고수들께서 대거 참석해주셨다. 갈고닦은 실력을 겨루고 배우면서 친선을 다지자.”

참가자 대부분은 60대 이상, 50대는 둘뿐이다. 식사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각자 가방을 열어 연과 얼레를 꺼내 펼쳐놓기 시작했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 준비해온 연을 꺼내 보여주는 참가자들의 표정에선 전통문화를 보전하며 즐긴다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방패연의 모양은 같아도, 색상과 무늬 등은 각자의 개성을 담아 각양각색이다. 얼레도, 4모 얼레에서부터 6모·8모·12모 얼레까지 다양하다. 대회 참가 때 보통 10~20개의 연과 얼레 2~3개씩을 각자 준비해 온다고 한다.

연신 바람의 방향을 살피며 연실을 묶는 참가자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경기는 인천팀·서울팀 간의 단체전과 개인전으로 나눠 치러졌다. 단체전은 추첨으로 조를 짜 두 사람씩 맞붙는 식이고, 개인전은 둘이 겨뤄 이기면 다음 사람과 또 겨뤄 마지막에 남는 선수가 우승하는 녹다운 방식이다.

‘삑~’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소리. 바람이 매우 적어 연 날리기 좋은 날씨는 아니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몇 번의 얼레 짓만으로도 연을 쉽게 허공에 띄워 올린다. “이래서 우리 방패연이 최고의 연이란 겁니다. 이렇게 바람 적을 때 날려놓고 연싸움을 벌이는 연은 세계 어디에도 없어요.” 이날 참석자 중 최고령자인 윤오현(85)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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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싸움에 앞서 대한연협회 우현택 회장(사진 위) 등 운영진이 대진표를 짜고 있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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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 특성으로 방어, ‘칼’의 특성으로 공격

연싸움은 보통 실을 50~60m쯤 푼 상태에서 겨룬다. 바람이 센 경우엔 100m 이상 풀 때가 많은데 얼레와 줄을 다루는 데 엄청난 힘이 필요해진다고 한다. 심판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멀찍이 떨어져 연을 띄운 두 선수는, 실을 대각선으로 교차하도록 연을 날리며 상대 실 위에 먼저 걸치거나, 밑으로 파고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자, 바람 온다. 지금이다.” 바람이 다소 강해지더니 두 실이 팽팽해졌다.

“걸었다!” 두 실이 교차하는가 싶은 순간, 한쪽 연이 갑자기 힘을 잃고 바람에 날려 땅으로 떨어졌다. 승부는 순식간이었다. “늦었어. 돌아서 빠져나왔어야지. 쯧쯧.” 주변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싸!” 승자는 환호하며 팽팽한 실을 얼레에 감았고, 패자는 아쉬운 표정으로 떨어진 연을 주우러 갔다.

연싸움 기본 기술엔 감아치기, 실 주기, 튀김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을 응용한 공격과 방어 기술이 따라온다. 윤씨는 “실의 특성을 이용해 방어하고 칼의 특성으로 공격하는 게 기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상대가 공격해올 땐 피하거나 실을 느슨하게 하고, 공격 땐 팽팽한 상태로 풀거나 감아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두 실이 직각에 가깝게 만날 때가 기회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실 위에서 상대 실을 미끄러지게 하면 끊어진다.

바람을 한껏 받아 팽팽해진 연실을 다루는 일은 칼을 다루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건 칼싸움과 다름없어요. 쇳가루를 먹인 것이라 당기면 실이 아니라 칼이 됩니다.” 우 회장이 연실 양쪽을 당겨서 잡게 하더니, 팽팽하게 잡은 다른 연실로 살짝 눌렀다. 마치 칼로 자르듯 실이 끊겼다. 실을 두 겹 세 겹으로 잡아도 똑같이 쉽게 끊겼다. 요즘은 사기나 유리 가루 대신 공작기계 연마용 쇳가루 성분을 접착제와 함께 실에 입혀 쓴다고 한다. 연싸움에서 목장갑 착용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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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연과 얼레.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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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싸움의 지존’과 ‘줄연의 달인’

경기 도중, 참가자 중 막내이자 방패연 경력 2년인 김기현(55)씨에 물었다. 연싸움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 김씨는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드넓은 자연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즐긴다는 것, 둘째 집중력과 순발력이 좋아지고 온몸 운동이 된다는 것, 셋째 직접 연을 만들며 전통놀이를 보전한다는 보람 등이다.”

김씨가 한쪽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을 가리켰다. “팔십대 어른들인데요. 50~60대처럼 팔팔해요. 근데 저분들하고 연싸움 붙으면 나는 10초도 안 돼 나가떨어집니다. 기술이 대단한 분들이죠.” 김씨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여기 모인 사람 중엔 정말 쟁쟁한 분들 많아요.”

얼마나 고수들이기에 김씨가 이토록 존경스러워할까. “저쪽 분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연싸움의 전설’이시고, 이쪽 분은 유명한 ‘줄연 날리기의 달인’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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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모 얼레’를 들고 연싸움에 나선 회원.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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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싸움계의 ‘살아 있는 전설’ 우상욱(82)씨. 1년에 대회가 열두 번 열리면 열한 번은 우승한다는, 연싸움계의 최강자다. ‘연싸움의 지존’으로도 불린다. “일제강점기에 아버지가 방패연을 하루에 300장씩을 만들어 팔았어. 그걸 여러 점방에 배달하는 일을 내가 어릴 때부터 했어요. 그러면서 연을 배웠지.” 우씨의 말이다. 우씨는 일찍이, 상대보다 반발 앞서 들어가는 감아치기·찍어치기 등 공격적 기술을 개발해 지난 수십년간 연싸움 대회를 독식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우승·준우승을 380번인가 했지.” 프랑스 등에서 열리는 세계연날리기대회나 축제의 단골 초청 인물이기도 하다.

‘줄연의 달인’ 김형인(60)씨는 “3000장의 가오리연을 2m 간격으로 줄줄이 묶은 6㎞ 길이의 줄연을 날렸다”는 줄연의 대가다. 김씨는 이날 바람이 적은 날씨인데도, 가오리연 300장을 단 600m 길이의 줄연을 어렵잖게 날려 올리는 시범을 보여 박수를 받았다. 최고령자 윤씨도 각종 대회 우승을 여러 차례 거머쥔 강자다. 그는 자신의 아들과 결승전을 치른 적도 있는, 대를 이어 즐기는 연싸움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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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싸움 경기가 마무리돼 갈 무렵, 세 사람의 연싸움 강자가 이구동성으로 털어놓은 바람은 이랬다.

“하루빨리 연싸움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받고,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채택돼, 국민 모두가 즐겼으면 합니다. 공식 경기장 지정도 시급하고요.”

이날 경기는 비구름이 몰려오며 개인전이 중단돼, 연싸움꾼들은 다음주를 기약하며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단체전 결과는, 서둘지 않고 기다렸다가 기습적으로 반격하는 기술을 주로 쓴, 인천팀의 9대3 승리였다. 인천/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SC] 방패연 싸움의 기술과 용어 정리

얼레

연실을 감아두는 데 쓰는 나무로 만든 도구. 자새·연패라고도 한다. 실패를 닮은 2모 얼레에서부터 12모 얼레까지 있다. 모가 많을수록 실이 부드럽게 감기고 풀리지만, 개인 취향에 따라 모가 적은 얼레를 선택하는 이도 많다. 연싸움은 방패연과 실을 다루는 얼레 기술이 좌우한다. 얼레를 당기거나 밀어 실의 강약을 조절하고, 실을 감거나 풀어 연의 방향을 바꾼다. 바람을 잘 이용하고 얼레로 실의 힘을 조절해 상대 실을 공략하는 게 기술이다.

연실

옛날엔 명주실을 썼지만 요즘은 명주실과 함께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섬유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 중엔 여전히 명주실을 최상으로 치는 이가 많다.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는 강한 바람에선 늘어남이 심해 순발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싸움연 실에는 과거 사기 가루나 유리 가루를 갖풀(아교)과 함께 먹여 사용했지만, 요즘엔 금속 연마제로 쓰는 입자 고운 분말(광석 가루)을 접착제와 함께 쓴다. 얼레 하나에 감는 실의 길이는 700~800m 정도다.

기술

기본 기술은 ‘아래 감아치기’, ‘위 감아치기’, ‘찍어치기’, ‘튀김’(탱금), ‘실 주기’ 등이 있다. 감아치기는 상대 연이 머리를 돌려 물러갈 때 위 또는 밑으로 연을 보내 상대 실을 감아 공격하는 것이다. 감아먹기라고도 한다. 튀김은 실을 감다가 급격하게 풀어내는 것을 말한다. 한껏 당기다가 급히 풀면 실 나가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한다. 상대 실과 접촉하는 결정적 순간에 튀김을 주면 상대 실을 끊을 수 있다. 상대 실 위쪽에 실을 올리고 튀김 기술을 쓰는 것을 찍어치기라 부른다. 실 주기는 실의 팽팽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풀어주는 것으로, 역시 공격 기술의 하나다.

연날리기대회

경북 의성군 위천생태공원에서는 해마다 5월 초 세계연축제가 벌어진다. 한국 전통 연과 함께 각국의 전통 연, 창작 연, 스포츠 연 등 세계 연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행사다. 대한연협회에선 해마다 10차례의 연날리기대회(연싸움대회)를 각지를 돌며 개최한다. 특히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매달 대회를 연다. 올해 확정된 대회로는 부산대회(9월24일, 삼락동), 경남 사천대회(10월15일, 대방동 대교공원)가 있다.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무렵엔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연날리기 행사를 벌인다.

Kite

연. 종이 혹은 천에 뼈대를 붙여 실을 맨 다음 공중에 높이 날리는 장난감. 솔개 연(鳶)자를 씀. 한국 등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광범히 분포돼 있음. 최근에는 명절에 즐기는 민속놀이보다 대중적인 레포츠로 각광. 연의 운동성에 주목한 서구권의 ‘스포츠 카이트’를 즐기는 이들도 많아짐.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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