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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금융과 AI 만난 '핀테크'… 성공 열쇠는 규제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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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구자현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경제연구부 연구위원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핀테크(FinTech)란 단어를 자주 접해봤을 겁니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최근 혁신적인 기술과 금융 서비스를 결합해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뜻합니다. 핀테크의 등장은 기술 환경이 달라진 것이 가장 큰 배경입니다. 애플의 출현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사용이 급증했고, 젊은 세대들은 금융기관에 찾아가는 것보다 모바일을 통해 금융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익숙한 일이 돼 버렸습니다. 새로운 금융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금융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습니다. 미국 JP모건의 CEO 제이미 다이먼은 "구글, 페이스북이 우리 금융기관의 경쟁 상대"라고 선언했을 정도입니다.

신기술로 금융 문턱 낮추고, 맞춤형 서비스

기존 금융회사들이 기성복처럼 다수 고객에게 정형화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면 핀테크는 개별 금융 소비자의 필요에 따라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를 들면 개인 자산관리 핀테크인 미국의 'Mint'는 예금 계좌, 신용카드, 직불카드를 통합해 고객이 과다한 지출을 하고 있지 않은지,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어떤 금융 상품에 가입해야 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해 줍니다.

미국의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핀테크인 'Betterment'는 기존 금융기관이 높은 수수료(1% 이상)로 거액의 자산가에게만 제공해왔던 자산운용 서비스를 소액 자산에 대해서도 낮은 수수료(0.35%)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해외 송금 업체인 'Transfer Wise'는 기존 은행(7.46%)보다 훨씬 저렴한 수수료(0.5%)로 해외 송금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개인 간(P2P) 대출 관련 핀테크는 기존 은행의 대출 문턱이 높아 자금을 융통할 수 없었던 금융 소외 계층에게도 대출 기회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인디고고, 킥스타터 등 크라우드펀딩(다수의 개인에게 투자를 유치하는 행위) 관련 핀테크는 유망한 벤처·창업 기업이 자본을 모집해 기술 혁신에 나설 수 있게 지원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핀테크가 보험 영역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는데 보험의 핀테크인 인슈어테크(InsurTech)는 빅데이터, AI(인공지능), 머신러닝, 사물인터넷 등을 활용해 저렴한 가격으로 고객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는 보험 상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새로운 사례들을 만드는 핀테크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일자리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많은 사람이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 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금융의 4차 산업혁명으로 인식되는 핀테크가 등장하면 금융기관의 일자리들을 빼앗을 것이라는 걱정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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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금융기관이 기술을 도입하고 효율화·고도화되면서 관련 업계 일자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의 대형은행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지점 수가 2010년 6052개에서 2015년 4787개로 대폭 줄었고, 영국의 HSBC 은행도 지점 수가 2010년 1311개에서 2015년 964개로 급감했다고 합니다. 대신, 금융 소비자에게 맞춤형 금융 서비스 제공을 위한 기술·금융 인력 수요는 늘어나 핀테크가 활성화된 일부 국가에서는 관련 일자리가 늘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핀테크가 활발한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뉴욕을 중심으로 13만명의 일자리가 생겼고, 영국도 런던을 중심으로 6만1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됐습니다.

규제 풀어야 핀테크 성공

핀테크가 금융 서비스를 혁신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핀테크에 맞는 생태계가 조성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수한 혁신 역량 인재가 있어야 하고, 투자 자금이 공급돼야 합니다. 또 핀테크에 대한 금융 소비자의 수요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금융 혁신을 창출할 수 있는 금융 규제 환경이 갖춰져야 합니다.

미국은 금융 관련 규제가 매우 복잡합니다. 하지만 우버, 에어비앤비 등과 같이 새로운 혁신 사례가 등장할 경우 초기에는 지켜보는(wait and see)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핀테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소 규제를 느슨하게 하는 것은 미국의 핀테크가 가장 활발하게 발달하고 있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글로벌 금융허브로서 위상을 강화하고 금융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핀테크 육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영국을 핀테크 허브로 만들기 위한 선결 과제로 금융 규제 완화를 제시했습니다. 금융행위감독청(FCA) 내에 이노베이션 허브를 신설하고 창업 기업의 금융 규제 관련 상담을 실시해 핀테크의 금융 규제 탐색 비용을 크게 줄였습니다.

특히 핀테크가 규제에 대한 부담 없이 금융 소비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금융 혁신을 테스트할 수 있게 세계 최초로 금융 규제 테스트 베드(regulatory sandbox)를 도입했습니다. 금융 규제 테스트 베드란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도입하려는 사업자가 완화된 규제를 적용받아 해당 서비스를 일정 기간 테스트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호주·싱가포르·캐나다 등도 이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사례를 참고해 지난 3월 금융 규제 테스트 베드를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금지하는 항목을 정하는' 영국, 호주, 싱가포르의 법 체계와 달리 '허용하는 항목을 정하는' 우리나라의 법 체계에서는 금융 규제 테스트 베드를 적용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핀테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투자 환경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핀테크는 대부분 창업기업(startup) 이므로 성장 단계별로 필요한 대출이 아닌 투자 자금을 조달해야 금융 혁신을 주도하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미국의 경우 각각 77억달러, 62억달러의 자금이 핀테크 창업 기업에 투자되고 있으며 영국도 약 8억달러가 핀테크 창업 기업에 투자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시티은행, 스페인의 BBVA와 같은 글로벌 금융기관은 금융 서비스를 혁신하고 최신 금융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핀테크 보육센터를 신설해 핀테크와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으며, 유망 핀테크에 대해서는 투자와 M&A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국내 규제 얼마나 복잡하면… 핀테크 해보려다 法전문가 된다는데]

업종별 수억~수십억 자본금에 경력 직원, 별도 서버도 갖춰야
당국 "투자자 보호 위한 조치"


우리나라도 최근 핀테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와 같은 인터넷 전문 은행이 등장했고, 크라우드 펀딩(다수의 개인으로부터 투자 유치), 해외 송금 등 다양한 핀테크 업체가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며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정부도 핀테크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2015년 5월 핀테크지원센터를 개설해 핀테크에 대한 상담을 시작했고, 작년 8월에는 금융권 공동 핀테크 오픈 플랫폼도 열었습니다. 은행, 보험회사 등 127개 금융기관도 핀테크보육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협업 사업 모델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핀테크 시장을 놓고 거액의 기업 인수·합병(M&A)이나 주식시장 상장 등 해외에서처럼 성장한 사례는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만약 여러분이 핀테크에 도전했다고 생각해봅시다.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개발했기 때문에 금세 투자를 받고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곧 난관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현행 전자금융업법에 따르면 지급 결제 핀테크 기업을 창업하려면 최소 3억원, 증권 등 금융 투자 관련 핀테크라면 최소 5억원의 자본금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또 보험업법에 따르면 일부 보험 종목을 취급하는 경우 자본금 기준은 50억원에 달합니다. 여기에 별도의 서버를 갖추고 금융 경험을 지닌 인력이 있어야 합니다. 핀테크 CEO가 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금융 당국은 금융 사고를 방지해야 하고 투자자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진입 장벽을 두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장려하기 위해 일부 규제를 완화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자본시장법, 보험업법, 은행법 등 업권별로 칸막이가 촘촘해 현행 법체계에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핀테크 하려다 법 전문가가 됐다"는 한 창업가의 후일담이 여기저기에서 회자됩니다. 이러한 규제 환경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양한 융복합 금융서비스 혁신을 시도하기 어렵고, 외국처럼 핀테크가 기존의 금융기관에 위협적이거나 동등한 위치로 협업하기 곤란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구자현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경제연구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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