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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획일화된 직장 복장 규범, 조직 창의성과 혁신 막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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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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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트-154] 최근 직장 내에서 반바지 복장을 허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실제로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직장인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제도는 시행됐지만 아직 사회·문화적인 인식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바지는 직장 상사 또는 심지어 동료에게서조차 예의가 없다거나 진지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준다. 디지털 혁명을 넘어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려 하는 시기에 직장 내 복장 규범만은 여전히 관습적이고 엄격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벤 베리 라이어슨대 패션학과 부교수는 직장 내 복장 규범에 관한 연구 결과를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22~78세의 직장인 남성 50여 명을 인터뷰한 뒤 직장 내 복장 규범이 그토록 관습적이고 엄격한 이유와 그것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냈다.

연구에 따르면 남성 직장인들은 화려하거나 여성적인 디자인의 옷을 선호하더라도 출근할 때는 정장을 입거나 단색 또는 어두운 색의 옷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려한 옷을 입는 것이 더 좋지만 직장 동료 혹은 선후배들로부터 이상한 시선을 받거나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기 때문이다. 베리 교수는 정장과 넥타이 등 남성적인 복장으로 드러나는 남성성이 프로페셔널리즘과 성공, 권력의 상징으로서 직장 내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리 교수는 이러한 상징에 대한 믿음이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화려하고 여성적인 옷은 이러한 믿음을 너무 쉽게 무너뜨리기 때문에 그토록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남성적인 복장과 남성성이 성공과 권력을 담보해준다고 믿어왔지만 아무렇지 않게 화려한 옷을 입는 남성 직원들은 그런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불편함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마케팅 매니저로 근무하는 한 참여자는 화려한 옷에 대해 "너무 여성적이다" "그냥 싫다"는 반응을 보였다.

베리 교수는 이와 같은 엄격한 복장 규범과 획일화가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조직의 창의성과 혁신을 막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창의성과 혁신은 개인의 차이를 드러내도록 장려하고 존중하는 곳에서 발휘될 가능성이 크다.

베리 교수는 "패션은 자아 정체성과 개성을 드러내는 가장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어 "금속 가죽 재킷을 좋아하는 직원은 미래 공상과학 기술에 관심이 있을 수 있고 패턴과 무늬 옷을 좋아하는 직원은 디자인과 예술에 관심이 있을 수 있다"며 "이러한 그들의 관심사와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 업무에도 창의적인 적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직장 내 복장 규범을 둘러싼 논란은 여성성을 나타내는 화려한 옷보다는 주로 반바지 등 편의성을 높여주는 옷의 허용 여부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제도 또는 사회·문화적 편견을 통해 입고 싶은 옷을 입지 못하게 하고 획일화된 복장을 강요한다는 측면에서 함의는 같다. 직원들의 정체성과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게 함으로써 직원 개인의 창의성과 가능성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베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획일화된 복장 규범을 강요받은 참가자들은 "나의 정체성과 개성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드러내지 말라고 강요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리 교수는 "무슨 옷을 입는지는 업무 성과와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그 대가는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최근 조직의 창의성과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다양한 편의시설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베리 교수는 사회·문화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 반바지나 화려한 옷을 입는 이들은 예의가 없거나 프로페셔널하지 못하게 보이는지, 왜 직장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드러내면 안 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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