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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뉴스분석]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 노무현의 교훈 넘어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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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 후임에 대한 관심이 한창이던 지난 6월, 판사들 사이에 법원장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는 박시환, 김영란, 전수안 등 전직 대법관이 물망에 오르던 때였다.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58·사법연수원15기)과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58·14기)다. 민 부장판사는 지난 2월까지 서울동부지법 원장이었다.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거친 사람이어야 한다는 통념을 깨면서, 더 이상 대법원장이 대법관들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후배 판사들의 신망이 깊은 대표적인 고위법관이었다.

우리나라 대법원장은 전 세계 대법원장에게는 없는 특별한 권한이 있다. 1973년 유신헌법에서 시작한 독자적인 대법관 제청권이다. 제청권은 대법원을 동등한 합의체가 아닌 대법원장 주도의 재판부로 변질시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대법관 제청권으로 대법원장이 법원장 등을 줄세우고, 다시 법원장들은 판사들에 대한 평정권으로 판사들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미국, 독일, 일본 어디에도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이라는 게 없다. 대법원장도 대법관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더구나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도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삭제키로 합의한 상태였다. 법조계에서는 “개헌이 되지 않아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이 삭제되지 않더라도, 지금과 같은 독단적 제청권 행사는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판사들은 “새 대법원장이 연장자이거나 연수원 기수가 높아야할 이유가 없다”고 했고, “미국 연방대법원장 존 로버츠는 2005년 취임 당시 50세로 대법관 9명 가운데 가장 어렸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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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이 없는 얘기도 아니었다. 취재 결과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이홍훈 수원지방법원장(71·4기)을 대법원장 후보에 올렸다. 법조계 관계자는 “문재인 민정수석이 이홍훈 법원장을 찾아가 대법원장 얘기를 구체적으로 꺼냈다”면서 “하지만 이홍훈 법원장이 ‘대법관도 거치지 않고 대법원장을 하는 것은 사법부를 흔드는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고 전했다. 이듬해인 2006년 이홍훈 법원장은대법원장이 아닌 대법관에 임명됐다.

이달 들어서면서 신임 대법원장 하마평이 본격적으로 나왔다. 주로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진보 성향 대법관들 이름이었다. 김영란(60·10기), 박시환(64·12기), 김지형(59·11기), 이홍훈, 전수안 전 대법관(65·8기)이다. 이 가운데 이홍훈 전 대법관은 대법원장 정년 70세를 넘은 상태였다. 김지형 전 대법관은 로펌의 대표로 일하고 있었다. 남은 세 사람이 주로 거론됐지만, ‘판사 블랙리스트’를 비롯한 전례가 없는 사법개혁 과제를 부담스러워했다.

청와대 안팎에서도 진보 성향의 명망가로는 더 이상 사법부를 바꾸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조계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진보성향 대법관들인 ‘독수리5형제’는 결국 소수로만 남았고, 민변 회장 출신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은 사형과 간통에 합헌 의견을 내는 보수 색채를 보였다”며 “더 이상 과거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을 했다거나 사회운동에 참여했다는 소박한 이유로는 비대한 관료조직인 사법부를 바꾸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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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서도 대법원장에 김명수 법원장을 지명한 것은 김이수 재판관을 헌재소장에 지명한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김이수 재판관이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서 기각의견을 냈지만 지금도 법조계는 일방적으로 인용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면서 “헌법재판관으로 재직 중인 김이수 후보자가 헌재소장이 된다고 해서 헌재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청와대가 헌재의 다양성을 지지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하면 사법부 지각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법원 관계자는 “현재 관행대로 보면 대법원이 어떻게 될지 상상이 힘들다”고 했다. 가령 헌재소장은 소수의견에 종종 몰리지만 대법원장은 다수의견에만 있었다. 명분은 리더십 발휘이지만 실상은 대법관 제청권의 힘이었다. 그러나 김 지명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소수의견으로 몰리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 대법원장의 독단적 제청권 행사에 줄곧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김명수 법원장이 대법원장에 취임하면 사법부는 구조를 무너뜨리는 근본적인 개혁에 들어설 수 밖에 없다”면서 “청와대로서도 대법원장과 대법원을 잡아 사법부에 영향력을 미치는 일을 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거대한 제왕적 사법부 피라미드 붕괴에 저항하는 쪽에서는 우리법연구회나 보혁갈등 같은 프레임을 내세워 저항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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