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브랜드리스', 식품ㆍ가사용품ㆍ화장품 등 3달러에 판매
달러 쉐이브 클럽, 가격 파괴로 면도기 시장 다크호스 등장
브랜드에 붙은 거품 제거해 "생필품 만큼은 평등하게 제공"
지난 7월 11일 오픈한 미국의 온라인 스토어 ‘브랜드리스(Brandless)’가 판매하는 품목들이다. 브랜드리스는 식품부터 가사용품, 화장품, 조리도구 같은 생필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통업체다. 그런데 이 회사가 구글 벤처스를 비롯한 대형 투자자들로부터 5000만 달러를 투자 받았다. 주요 언론들은 브랜드리스의 영업 개시일에 맞춰 일제히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브랜드리스(Brandless) 온라인 스토어에서는 모든 상품을 3달러에 구매할 수 있다. [사진 브랜드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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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급하는 상품군은 200개 가까이 되지만 각 품목은 단 하나의 엄선된 제품으로만 구성한다. 맛·안전·친환경성 등 까다로운 조건으로 소수 정예 협력업체를 선별했으니 고객은 혼란과 피로감 없이 필요한 물건을 카트에 담으면 된다. 패키지에는 큰 로고나 화려한 디자인 대신 제품의 기본 특성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표기한다. ‘브랜드리스’라는 이름조차 넣지 않았다. 군더더기를 빼고 가격까지 통일시킨, 단순함의 정수를 보여주는 전략이다. 수많은 종류의 상품을 다양한 가격대에 제공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힌 아마존과는 정반대다.
브랜드리스 창업자 티나 샤키(왼쪽)와 이도 레플러. [사진 브랜드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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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리스의 등장은 시장 환경 변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 비롯됐다. 세제·치약·면도기 같은 생활용품은 부모가 사용하던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대표적인 제품들이다. 그런데 1980년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부모의 소비패턴과 브랜드를 무조건 답습하지 않는다. 개성이 강하고 정보력이 뛰어난 이들은 단순히 유명하거나 익숙한 브랜드가 아닌 본질적인 가치,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 제품을 선호한다. 밀레니얼의 소비 성향은 오히려 기성세대에 영향을 미쳐 시장 전반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너무 높은 품질은 의미 없이 가격만 올린다’는 '이케아식 사고'가 다양한 연령층과 소득층으로 확산됐다.
달러 쉐이브 클럽(Dollar Shave Club)의 면도날 세트. 이 회사는 구독 개념으로 고객에게 배송해주는 전략으로 성공했다. [사진 disruptionhub.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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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트하인즈(Kraft Heinz)처럼 대규모 마케팅을 펼치는 대형 식품 브랜드는 최근 유통 기업의 자체 브랜드나 포지셔닝이 뚜렷한 소형 브랜드의 기세에 밀려 성장이 정체됐다. [사진 marketwatch.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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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세는 빅 브랜드 입장에서는 '체면 유지'를 위해 치러야하는 이름값이기도 하다. 질레트의 광고에는 타이거 우즈부터 엑스 페케까지 최고의 스포츠 스타가 등장한다. 글로벌 기업의 광고 각축장인 미국 슈퍼볼의 2017년 평균 광고비는 500만 달러에 이른다. 반면 달러 쉐이브 클럽은 CEO가 직접 등장한 4500달러짜리 유튜브 동영상만으로 320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질레트는 달러 쉐이브 클럽을 쫓아 면도날 배송 서비스를 시작하고 제품 가격도 20% 인하하는 처지가 됐다. 전통적인 대량 마케팅을 고수해온 켈로그·크래프트하인즈 등 대형 식품 브랜드들도 유통업체의 자체 브랜드나 포지셔닝이 뚜렷한 소형 브랜드의 기세에 밀려 성장이 정체됐다.
브랜드리스처럼 이름 없는 브랜드로 승부하는 일본의 무인양품(無印良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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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장조사 업체 퍼네즈 마케팅 그룹이 몇해 전 전 세계 6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CEO의 73%가 마케팅에 대한 신뢰가 낮고 기업 성장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고 응답했다. 예술적이고 화려한 광고만 양산해 경영 원칙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도 컸다. 경영진의 회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80% 이상의 마케터들은 여전히 스타일을 중시하고 인지도 높이기에 집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식의 괴리가 커지면 마케팅 무용론이 제기될 지도 모른다.
한국의 이마트도 ‘노브랜드(No Brand)’ 매장을 곳곳에 열고 새로운 유통 실험에 나서고 있다. [사진 이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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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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