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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링컨 기념관에'Fxxx' 낙서까지… 미국, 인종내전 치닫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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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우월주의자들이 기리는 '남부연합 동상' 철거 놓고도 갈등]

인종주의 반대 시위 이어지자 극우단체들도 주말 대규모 집회

美언론 "새로운 남북전쟁 양상"

트럼프 '인종주의 비판' 하루만에 "양쪽 잘못" 말바꿔 싸움 부추겨

공화당 "백인 우월주의 역겹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州)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백인우월주의 집회 유혈 사태 이후 백인우월주의를 주장하는 극우 세력과 인종주의 반대 세력이 연일 맞불 시위를 벌이면서 미 전역에 일촉즉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총성 없는 내전(內戰)'이라는 말도 나온다.

백인우월주의를 규탄하는 시위대 수십 명은 지난 15일 노스캐롤라이나주(州) 더럼 카운티 법원 청사 앞 남부연합 병사 동상을 끌어내렸다. 이 동상이 미국 남북전쟁(1861~1865년) 당시 흑인 노예제를 찬성한 남부연합의 상징이기 때문에 철거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은 남부연합군 깃발과 나치 상징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여왔다.

흑인 여대생 톰슨(여·22)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동상 목에 밧줄을 걸었고, 시위대는 줄을 잡아당겨 동상을 바닥으로 쓰러뜨렸다. 그러자 "우리가 혁명이다" "노(no) 트럼프, 노 KKK(백인우월주의 단체), 노 파시스트 USA" 등의 구호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동상에 침을 뱉거나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지난 주말 뉴욕과 인디애나, 캘리포니아 등지에선 백인우월주의에 대항하는 대규모 시위가 동시다발로 열렸다. 이에 맞선 극우 단체들도 이번 주말(19~20일) 캘리포니아, 워싱턴 DC 등 9개 도시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노예해방을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을 기리는 워싱턴 DC 기념관엔 15일 붉은 스프레이로 쓴 욕설 낙서 'FxxK law(망할 법)'가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인종주의자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부연합 동상을 둘러싼 미국 내 논란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켄터키주(州) 렉싱턴시와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등 지방정부가 동상 철거 논의에 속도를 내기로 하면서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맞붙고 있다. 동상 존치론자들은 동상이 단순히 노예제 옹호나 인종주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전쟁 당시 압제적인 연방제에 대항해 주(州) 권리를 수호하려 한 남부연합군의 희생을 기린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인우월주의자들을 감싸는 발언으로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유혈 사태에 대해 "대안 우파에 달려든 대안 좌파는 전혀 죄가 없느냐"며 "양쪽 모두 다 책임이 있다. 그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백인우월주의 집회에 찾아가 맞불 시위를 벌인 좌파 단체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었다. KKK 대표를 지낸 데이비드 듀크는 트위터에 "대통령이 진실을 말하고, 좌파 테러리스트들을 비판한 것에 감사한다"며 환영 메시지를 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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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0대 백인우월주의자가 차량을 몰고 인종주의 반대 세력을 향해 돌진한 샬러츠빌 사건이 발생한 12일 "여러 편에서 나타난 폭력을 규탄한다"고 양비론을 폈다가 역풍을 받았었다. 이에 "비난 대상엔 KKK 등 극단주의 단체가 포함된다"(13일) "인종주의는 악"(14일)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번에 또다시 말을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노예를 소유했던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전 대통령 동상도 없앨 것이냐"며 인종주의자들의 논리를 펴기도 했다. 또 "샬러츠빌을 위로 방문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엔 "내가 거기 최대 규모 와이너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전쟁의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 인종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CNN은 "충격적인 기자회견이었다"며 "존 켈리 비서실장도 팔짱을 낀 채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고 했다.

머크와 인텔, 언더아머 등 미국 유력 기업 3곳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이날 트럼프 발언에 항의하며 대통령 직속 경제자문위원회서 탈퇴했다. 28명 정원이었던 위원회는 이번 사건과 파리기후협약 탈퇴, 반(反)이슬람 정책 등 파문을 겪으며 현재 21명으로 줄었다.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비난이 속출하고 있다. 폴 라이언 공화당 하원의장은 트위터에 "도덕성 모호성은 안 된다. 백인우월주의는 역겹다"고 썼다.

미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미국이 새로운 형태의 남북전쟁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내전 전문가 케이스 마인은 "큰 규모의 폭력이 발생하고 정부군의 치안 유지 필요성이 제기되는 점, 여론이 양극화되고 정치 리더십의 실종으로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점 등 현 상황은 내전의 구성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했다.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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