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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현대사진, 고대로마 만나 새로운 공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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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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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아를에서의 만남’ 사진축제 첫날인 지난 7월3일 프랑스 아를에서 예술가들과 예술 애호가들이 개막식 파티에 참석해 음악과 와인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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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를 사진축제 가보니

해마다 이맘때면 프랑스 남부 지중해와 맞닿은 인구 5만의 작은 도시인 아를은 온통 사진으로 넘실댄다. 거리마다 건물마다 사진 물결이다. 사진으로 해가 뜨고 사진으로 해가 진다. 수많은 발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슬렁거린다. 사진축제 기간 동안 10만명가량이 찾는다.

1970년부터 시작된 ‘아를에서의 만남’(Rencontres d’Arles) 사진축제가 올해로 48번째를 맞이했다. 해마다 7월 초가 되면 사진 수만장이 아를 곳곳에 고색창연하게 남아 있는 고대 로마시대 유적지에 전시돼 9월24일까지 석 달 가까이 사진전이 열린다.

지난 7월2일 프랑스 마르세유를 거쳐 아를에 도착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마치 고대 로마제국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4미터 높이의 성벽이 마을을 품고, 그 안에 자리잡은 오랜 건축물들은 뜨거운 지중해 태양에 그을렸는지 어두운 상아색을 띠었다. 그 햇빛 아래 드리운 짙은 그림자는 건물 사이사이에 카리스마를 새겼다.



해마다 거르지 않고 벌써 48번째
작은 마을은 온통 사진으로 넘실

원형경기장 등 유적 25곳에서
사진예술가 250명의 40개 사진전

발길이 꼬리 물고 어슬렁어슬렁
로마제국으로 시간여행 온 듯

노을이 짙어지면 삼삼오오 모여
어둠 벗삼아 밤새워 이야기 빛 밝혀

와인 비워지고 잔치가 끝나가면
별을 바라보며 론강 따라 쉬엄쉬엄

보고 즐기기 넘어 중요한 메시지 담아
생명윤리·몬샌토 해악 등 시대 이슈도

“전통 보도사진 사회현상 통찰 한계
현대예술사진의 메시지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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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아를에서의 만남’ 사진축제 첫날인 지난 7월3일 프랑스 아를에서 관람객들이 미하엘 볼프의 <도시에서의 삶> 사진전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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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아를에서의 만남’ 사진축제 일환으로 파티가 지난 7월5일 밤 프랑스 아를에서 열려 행위예술가들이 춤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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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사랑한 도시, 광기적 영감 원천

현장학습을 온 현지 학생들과 수많은 관광객이 마을 가운데 있는 웅장한 규모의 원형경기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경기장 옆에 늘어선 이들은 어느새 바닷가 모래알처럼 작아졌다. 섬세하게 조각된 석재로 이뤄진 이 건축물은 기원전에 지어졌지만 로마네스크 양식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걸어서 3분여 거리에 있는 고대극장은 경기장과 달리 흔적만 남아 있었지만, 로마 신화 속 희극과 비극을 떠올리자 로마 배우들의 노래가 되살아나 무대와 객석으로 울려 퍼졌다. 원형경기장과 고대극장을 비롯해 아를 유적지 8곳은 유네스코 등재 세계문화유산이다.

고대 로마의 멋에 사진을 더하자 마을은 예술이 됐다. 다음날 이 역사적 공간 25곳에서 예술가 250명과 전시기획자 30명이 준비한 40개 사진전시가 시작됐다. 사진 예술 애호가들은 마을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기 위해 구석구석 돌아다닌다. 오후 늦게 노을이 질 무렵이면 전시장에서 나온 이들은 어둠을 벗 삼아 새벽까지 파티를 즐기며 사진에 대한 이야기의 빛을 밝힌다. 와인이 비워지고 잔치가 끝나가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마을을 적시며 흐르는 론강을 따라 걷는다. 7월의 남부 프랑스보다 낭만적인 곳을 찾긴 쉽지 않았다. 아를에선 모두가 낭만에 취해 예술가가 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 축제의 현장을 다녀갔다.

아를은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고흐의 도시이기도 하다. 1888년부터 1년 남짓 머물며 <별이 빛나는 밤>, <프로방스 시골길의 하늘 풍경> 등 2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지금도 그가 서성이던 흔적들이 곳곳에 고스란하다. 자신의 귀까지 자른 광기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아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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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농업화학약품 및 농생명공학 회사인 ‘몬샌토’의 배경과 문제를 담은 <몬샌토: 사진 탐사>. 마티외 아슬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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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정치와 개인 사이 경계

아를 사진축제 감독인 삼 스투르제는 ‘새로운 공간’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아를을 가로지르는 모든 궤도는 당신을 남미에서 이란으로, 보스포루스(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터키의 해협)에서 시리아 국경으로 데려다준다. 홍수 속에서 스노클링을 할 것이고, 광활한 러시아 풍경을 가로지를 것이며, 우크라이나에서 레닌의 유물을 주워들 것이다. 또 몬샌토(미국의 농업화학약품 및 농생명공학 회사)를 다시 보게 될 것이고, 집시 가족의 20년 삶을 쭉 따라가게 될 것이다.’

스투르제 감독은 전시되는 수만장의 사진이 아를을 ‘새로운 공간’으로 바꿔놓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 공간을 통해 세계를 만난다. 그의 초대글 ‘새로운 공간’의 내용처럼 아를을 가득 메운 사진은 단순히 즐기기에만 그치기에는 아쉬운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를 사진축제에선 지난 2006년부터 축제 기간에 포트폴리오 리뷰를 통해 우승자 1명을 뽑아 이듬해 사진축제에서 전시를 열어주고 있다. 지난해 우승자로 뽑힌 프랑스 사진가 다비드 파티는 생명윤리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불멸 여인의 마지막 길> 사진전시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전시 서문을 통해 직접 관찰하고 기록한 생명윤리에 대한 생각을 관객들과 공유한다.

‘1951년 10월4일 헨리에타는 급하게 번진 악성 종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미국 버지니아에 있는 가족 묘지로 가기 위해 그는 볼티모어 존스홉킨스병원을 떠난다. 그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당시 그의 또 다른 여정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정확하게는 그의 세포 조직이 여정을 떠나고 있었다. 헨리에타가 있던 병원의 의사 조지 가이는 어떤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그의 종양 일부를 채취해 실험·관찰했다. 그의 세포는 계속해서 자라고 증식했다. 헨리에타는 몰랐지만 그는 불멸의 존재였다. 이 사례는 현대 의학계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문제가 되는 이야기다. 불멸 여인의 마지막 길은 논란의 경계에 있었다. 죽음과 불멸 사이, 이성과 감성 사이, 정치와 개인 사이, 추상과 경험 사이, 그리고 연구와 승인 사이의 경계다.’

프랑스 사진가 마티외 아슬랭은 <몬샌토: 사진 탐사> 사진전시로 농업화학약품 및 농생명공학 회사인 ‘몬샌토’의 배경과 문제를 관객들에게 알린다. 아슬랭은 지난 5년 동안 미국 정부와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몬샌토가 벌여온 행적이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 밝히기 위해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취재했다. 몬샌토가 생산한 베트남 전쟁용 고엽제와 농업용 제초제 등으로 다이옥신에 노출돼 건강과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은 관람객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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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들이 지난 7월6일 프랑스 아를에서 마티외 아슬랭의 <몬샌토: 사진 탐사> 사진전시장을 찾아 관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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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진가 애니 리버비츠가 지난 7월6일 프랑스 아를에서 본인의 사진전시장 앞에서 관람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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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농업화학약품 및 농생명공학 회사인 ‘몬샌토’의 배경과 문제를 담은 <몬샌토: 사진 탐사>. 마티외 아슬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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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 사진 5천장 한꺼번 전시도

이번 사진축제의 후원 재단 ‘루마’(LUMA)는 미국 사진가 애니 리버비츠를 초대해 1970년부터 1983년 사이 그의 초기 작업 사진 5천여장을 전시했다. 대중문화잡지 <롤링스톤>에서 일했던 당시 젊은 사진기자 리버비츠는 대중문화로 나타나는 현상 속에서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과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의 의미를 찾았다.

이 외에도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이란 사진가 66명이 자국에 대한 경험을 사진으로 담은 <이란: 38년>(Iran: Year 38), 독일 사진가 미하엘 볼프가 홍콩, 일본, 시카고, 파리 등 대도시에서 보고 느낀 내용을 사진으로 풀어낸 <도시에서의 삶> 등 사회적 이슈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내용의 사진 전시도 기획됐다.

수많은 이들이 이 축제에 전시된 현대예술사진에 왜 열광하는 걸까. 축제에서 만난 사진예술가들은 ‘고도로 교육받은 관객들은 평소 접하는 신문 속 보도사진을 신뢰하기보다 현대예술사진의 메시지를 더욱 신뢰한다’고 입을 모은다.

프랑스 파리를 거점으로 유럽에서 사진작업을 하고 있는 이대성 사진가도 아를 사진축제를 보며 현대예술사진이 관객과의 사이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 얘기했다. “전통 보도사진의 여러 영역에서 일부는 사회적 현상을 놓고 깊이 있는 통찰을 하는 데에 한계를 보인다. 결국 이 부족한 부분에 대한 갈급으로 현대예술로서 사진적 탐사가 시작됐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이 현대예술사진의 역할과 그 내용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스투르제 감독이 올해 축제의 열쇳말로 제시한 ‘새로운 공간’에서 현대예술사진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

아를/글·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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