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1 (화)

[하종강 칼럼] ‘군함도’도 표현하지 못한 징용 노동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강제징용당한 노동자들의 실태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등 현대의 노동 착취 개념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유황광산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죽어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노예들의 삶이 다시 복원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정도로 참혹했다.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일제 식민지’라는 표현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그 뒤 ‘일제 강점기’가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해서, 일본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특별히 강조할 때가 아니면 ‘일제 강점기’라는 단어를 써왔다. 이제 그 말이 겨우 입에서 자연스럽게 붙어 나오기 시작했는데, 몇 해 전부터 ‘대일항쟁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제는 정부나 언론도 그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그 단어도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나 역시 맥락에 따라 ‘대일항쟁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대일항쟁기’라는 단어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답하는 사람이 더 많다.

노동문제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대일항쟁기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어르신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강제징용당했던 경험담을 으레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 그 어르신들은 대부분 돌아가셨다. 징용당했던 사람들의 강제노역 배상 소송에 대한 판결 소식이 들릴 때마다 이미 돌아가신 그 어르신들이 생각나곤 했다.

2002년 ‘국민의 정부’가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에 따라 전태일 열사에 대한 배상금을 930만원으로 결정했을 때도 자기 나라 노동자의 권리를 그렇게 존중하지 못하는 정부가 강제징용을 당한 조선 노동자들의 권리를 홀대하지 말라고 일본 정부와 기업에 말할 자격이 과연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릴 적 동네 골목 끝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어르신들에게 들은 강제징용 이야기는 이미 환갑을 넘겨버린 내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고 머리에 각인된 내용은 배고픔으로 인한 고통에 관한 것들이었다. 동네 어르신은 자신의 모시적삼을 들추어 배를 직접 드러내 보이시며 “얼마나 못 먹었는지 뱃가죽이 다 등에 붙어버렸어야, 그것이 바로 ‘피골상접’이야”라고 설명하시곤 했다.

영화 <군함도>에 출연한 배우들이 “입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민망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훈도시’ 한장만 입고 촬영에 임하면서 징용 노동자들의 실태를 실감나게 묘사했지만, 실제와 같이 표현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실제 피골이 상접했던 징용 노동자들의 체형이었다. 아무리 가혹한 체중 관리를 한다고 해도 우리가 사진으로 보았던 징용 노동자들의 깡마른 몸처럼 살을 빼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12일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의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몸이 오히려 실제 징용 노동자들의 체형과 닮아 보여 마음 아팠다.

강제징용당한 노동자들의 실태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등 현대의 노동 착취 개념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유황광산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죽어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노예들의 삶이 다시 복원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정도로 참혹했다. 오죽하면 “강제로 가두어 놓고 사육하는 가축에게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나왔을까? 그것이 강제노역을 당한 징용 노동자 배상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현대 산업사회의 체불임금이나 손해배상 사건과 다른 결로 다뤄져야 하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애초에 합법적 법률관계라는 전제에 바탕을 둔 일본 법원의 손해배상 청구 기각 판결을 우리나라 법원이 부인할 수 있었던 것도 강제노역 자체가 일본의 불법적 지배라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난 8일과 11일 광주지방법원은 강제노역 피해자와 유가족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같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잇달아 1억원에서 1억5000만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을 했다. 광복 72주년을 맞아 그나마 한 줄기 기쁜 소식이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의 ‘전범 기업’을 상대로 국내에서 제기한 소송은 모두 14건에 이르지만 마무리된 소송은 한 건도 없다. 2000년 5월 국내 법원에 처음으로 제기된 소송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다.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 사망한 사람만도 여럿이다. 외교적 영향 등을 핑계로 대법원 판결을 더 늦출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 페이스북]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