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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우리도 당당한 노동자…직업 선택 권리 인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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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이주노동자 사망 해결 촉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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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히 여겨 달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도 당당한 노동자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는 겁니다.”

14일 오전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이주노동자 사망사건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45)이 말했다. 네팔 출신인 그는 1998년 한국에 들어와 서울 동대문구 봉제공장 등에서 일하다 2009년부터 이주노조 활동을 해왔다. 그는 “강제노동과 다름없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는 요구를 더 이상 무시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는 송출 비리, 불법체류 등 산업연수생 제도의 폐단을 해소하기 위해 2004년 8월부터 시행됐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독소조항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주노동자들의 실태가 알려지면서 최근 도마에 올랐다. 지난 6일 충북 충주의 자동차 부품업체 기숙사에서 숨진 27세 네팔 노동자 케서브 스레스터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됐습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이튿날에는 경기 화성의 돼지 축사에서 일하던 25세 네팔인 다벅 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저는 이제 없습니다. 꿈이 많았으나 이뤄지지 못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헌법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27만 이주노동자들은 예외다. 정부와 인력송출 양해각서(MOU)를 맺은 태국, 몽골, 필리핀 등 16개국의 취업 희망자는 취업비자(E-9)를 받아 맨 먼저 취업한 사업장에서 3년을 일할 수 있다. 계약을 연장할지는 사업주가 결정한다. 사업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회사를 옮길 수 없다. “회사를 옮기겠다고 하면 사업주들이 ‘이탈신고를 해버리겠다. 불법체류자가 되고 싶느냐’고 협박하는 경우가 많아요. 돈을 요구하거나 폭행을 하기도 해요. 사업장 변경 허가를 마치 선물인 양 인식하는 사업주들이 많습니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도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을 적용받도록 하고 있지만 직장을 옮길 자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법조문 속의 잠든 권리일 뿐이다. 지난 5월 한 달에만 경북 군위 등지에서 축사 정화조를 청소하던 중국, 네팔, 태국 출신 노동자 4명이 숨졌다. 사업주들은 분뇨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지 않았고, 마스크 같은 안전장비도 주지 않았다. 네팔 청년들의 자살이 알려진 것은 그나마 이들의 네트워크 덕분이었다. 라이 위원장은 “태국,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노동자들도 사정은 다 비슷하다. 이주노조에서 파악하고 있는 일들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국 대사관을 찾아가도 한국과 인력 송출계약을 맺은 당사국들은 문제를 덮으려 하기 일쑤다.

‘돈 벌러 와서 무슨 불만이 그리 많으냐’는 한국인들의 시선도 이들 앞에 놓인 장벽이다. 한국 정부도 고용허가제가 성공적인 이주관리 시스템으로 정착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라이 위원장은 “고용허가제의 본질은, 외국 인력은 열악하고 힘든 일에만 종사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에 이주노동자들을 ‘묶어 놓는’ 구조라는 것이다. 실제로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대개 농·업, 중소·영세 제조업체, 건축업 등 국내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열악한 업종에 몰려 있다.

이주노동자에게도 노동3권은 보장되며, 이주노조는 2015년 합법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사업주가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한 노동조합은 언감생심이다. 라이 위원장은 고용주의 권리에 초점을 맞춘 고용허가제 대신에 이주자에게 일할 권리를 부여하는 ‘노동허가제’를 도입하고, 이주노동자들에게 ‘노조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장을 옮길 수 있게 되면 정부와 사업주도 인력을 끌어오기 위해 처우 개선 노력을 하지 않겠습니까. 한국인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근로조건이 개선되면 한국인들도 일할 환경이 되는 것이니까요.”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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