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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야! 한국 사회] 박정희와 과학 원로들 / 김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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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과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인 1966년 설립되었다. 와세다대학 건축학과 출신, 교통부 장관 김윤기가 제1회 전국과학기술자대회를 개최하면서 스스로 초대 회장이 되었다. 과총은 시작부터 과학기술 현안을 정부와 여당에 건의하거나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과학기술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단체였다. 미국 과학재단(NSF)이 의회를 대상으로 과학계의 권익을 위한 로비와 연구비 협상을 진행하는 데 반해, 과총은 처음부터 대통령의 보좌기관으로 들어선 어용단체였다. 대부분의 젊은 과학기술인들은 과총이 뭘 하는 곳인지 모른다. 그들을 위해 뭘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박기영 사태에서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대과연,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은 박기영 교수가 사퇴에 불응하며 간담회를 펼칠 때 이름이 등장했다. 조완규, 채영복, 이승구 등을 비롯한 원로들과 정부 출연 연구원 원장 대부분이 참석했고, 이들 모두 지지 의사를 밝혔다. 여론은 물론 젊은 과학기술인들과도 완전히 괴리된 인식을 보여준 셈이다. 대과연은 19대 총선 직전 탄생해 ‘과학기술인 국회 진출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인 단체다. 과학기술인을 국회에 보내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게 한국 과학 원로들의 수준이다. 그 외에 딱히 이 단체가 하는 일은 없다.

과실연,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은 박 교수가 주로 활동했던 곳으로 2005년 설립된 민간단체다. 바른 목소리를 내며 적극 반영시켜 나가는 싱크탱크를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박 교수는 여기서 2015년 5월 ‘미래를 위한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다. 이 강연파일에 4차 산업혁명이 등장한다. 클라우스 슈바프 교수의 다보스 포럼이 2016년이었으니 꽤나 빠르게 유행을 좇은 셈이다. 과실연이 발표한 ‘미리 보는 2017년 과학기술 10대 뉴스’엔 줄기세포 치료의 대중화, 한국인 최초 노벨과학상 수상 등이 들어 있다. 과실연은 박기영 사태에 대한 성명서를 내지 않았다.

한림원, 여기선 과학기술한림원을 뜻한다. 1994년 순수 민간단체로 설립된 한림원은, 학문적으로 업적이 인정된 이들만을 회원으로 받아 다양한 학술활동을 펼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젊은 과학기술인 중 한림원이 뭘 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림원은 과학기술계 원로들의 의견이 절실했던 굵직한 사건들, 예를 들어 황우석 사태, 광우병 파동, 천안함 사태 등에서 항상 당시 정권의 눈치만 봤고, 여론과 괴리된 모습을 보였다. 한림원 부원장 박원훈은 <과학대통령 박정희와 리더십>이라는 책을 공저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장영실 동상을 없앤 자리에 박정희 동상을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현역 한림원장은 내과 의사다. 초대 원장을 제외하곤 과학자가 원장이 된 적이 없는 단체이기도 하다.

“과학기술자들은 대동단결하여… 조국 근대화의 유일한 방법은 과학기술 능력의 개발밖에 없다….” 박정희가 1966년 제1회 전국과학기술자대회에서 연설한 내용의 일부다. 박기영 교수는 ‘구국의 심정’이란 말을 썼다. 지난겨울 촛불은 박정희의 마지막 잔재를 털어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과학기술계에 박정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박정희를 숭배하는 원로들이 있고, 혁신을 주도하겠다는 인물조차 국가주의적 사고에 갇혀 있다.

박기영 사퇴의 교훈이 여기에 있다. 박근혜 탄핵은 과학기술인들에겐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싸움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 과학이 박정희 시대에 종언을 고하려 한다. 낡은 원로들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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