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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필동정담] 대통령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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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국 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판소리를 소재로 한 '서편제'다. 영화 자체의 우수성이 가장 큰 이유지만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이 정도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되겠다"고 말한 게 흥행에 적잖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장을 방문한 것은 취임 후 3년 만인 2006년 '왕의 남자'를 관람할 때였다. 노 전 대통령은 "이야기를 엮어가는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감상평을 내놓았다. 이미 관객 500만명을 모으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었던 이 영화는 최종 관객 1230만명을 돌파하며 7번째 1000만 관객 영화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를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지만 대통령이 보거나 호평한 영화는 단순한 개인의 문화체험을 넘어선다. 선택 자체가 일종의 정치 메시지로 해석되면서 영향력이 급격히 높아진다. 역대 대통령마다 자신의 정치철학을 드러낼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해 극장 나들이를 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명량'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 보수적, 애국적인 색채가 큰 영화를 관람했다. '국제시장' 관람 후에는 "그때는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울리면 경례를 하곤 했다"는 소회를 밝히며 당시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 운전사'를 관람하고 눈물을 흘렸다. 문 대통령은 "아직 광주의 진실이 다 규명되지 못했고 이것은 우리에게 남은 과제"라면서 "이 영화가 그 과제를 푸는 데 큰 힘을 줄 것 같다"고 말해 정책 반영 의지를 내비쳤다. 문 대통령이 관람한 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등 정치인들이 잇달아 이 영화를 보겠다고 나서면서 '대통령 관람 효과'가 벌써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이 영화를 자주 보는 것은 대중과의 공감대 형성, 시대정신 공유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다만 특정 이념 편향으로 흐르거나 지나친 '영화의 정치화'는 경계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가장 좋아하는 공상과학 영화 8편을 공개했다.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미지와의 조우' 같은 1960~1970년대 작품부터 최근작 '마션'까지 다양했다. 4차 산업혁명이 최대 이슈인 지금 문 대통령도 공상과학 영화로 국민과 소통할 기회를 가져보길 기대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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