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3 (월)

[단독]수능 개편안에 학생들 “내신 경쟁으로 친구와 벽 높아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중·고생 583명 설문 조사

63.4% "수능 절대평가 전환 반대"

교육부, 수능 개편안 이달 말 결정

학생들 "절대평가 하면 내신 경쟁 심해져"

절대평가 도입 폭 좁은 1안을 더 선호

통합사회·과학 관련해 64% "수능에선 빼야"

"우리를 실험쥐로 삼지 말아달라" 호소

중앙일보

2017학년도 수능에 응시한 학생들이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험지가 배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수능부터 한국사가 절대평가로 치러졌다. 교육부는 수능 절대평가 도입 방안을 담은 2021학년도(현 중3 응시) 수능 개편안을이달 말 확정할 계획이다.김상선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능이 절대평가로 바뀌면 대학은 수능만으로 학생을 뽑기 어려워지잖아요. 그러면 수능 대신에 내신을 중요하게 보게 되니까 친구들과의 내신 경쟁이 심해질 것 같아서 싫어요. 언니·오빠들 말로는 지금도 고등학교는 ‘내신 전쟁터’래요.”

지난 10일 교육부가 내놓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개편 시안에 대한 소감을 묻자 서울 소재 한 중학교 3학년 김모(16)양은 중앙일보에 이렇게 말했다. 개편 시안은 현재 중 3부터 적용된다. 핵심은 절대평가 적용 과목과 범위가 현재보다 늘어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절대평가를 확대하면 수능에서 수험생 간에 지나친 경쟁이 완화돼 학습 부담이 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정작 개편안 적용을 받게 될 김양은 “내신 경쟁만 더 치열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교육부의 시안은 현재 영어·한국사 2개 과목에 적용되는 절대평가를 통합사회·과학을 포함해 모두 4개 과목(1안), 아니면 수능 전체 7개 과목(2안)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달 말 확정된다.

중·고교생들은 수능에서 절대평가가 강화되는 내용의 이번 시안을 어떻게 바라볼까. 중앙일보가 11~13일 구글 온라인 설문 조사로 전국 중·고교생 583명에게 의견을 물었다. 설문에는 중앙일보 TONG 청소년기자단과 종로학원하늘교육 재원생이 참가했다. 학생들의 생각을 깊이 있게 듣기 위해 설문 참가자 중 5명은 별도로 심층인터뷰했다. 학생들에게 '수능 절대평가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물었더니 이 문항 응답자(572명) 중 63.4%(363명)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중앙일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왜 절대평가를 부담스러워할까. 심층인터뷰에서 나타난 학생들의 걱정은 ‘수능 절대평가→수능 변별력 저하→학생부 위주 전형(학생부 교과+ 학생부 종합) 확대’ 불안감이었다. 학생부 위주 전형은 내신을 중요하게 따지는 전형이다. 학생부에서 내신만 100% 보거나(학생부 교과) 동아리·독서·봉사 등 비교과 활동도 보지만 내신을 비중 있게 평가(학생부 종합)한다. 내신은 1학년 때부터 체계적으로 잘 관리해야 해 수능에 비해 '막판 뒤집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경기 고양시 대진고 1학년 서정환(15)군은 “내신 등 학생부는 입학 초기부터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이후에 만회가 어렵다. 반면에 수능은 뒤늦게라도 열심히 준비하면 점수를 올리는 게 가능한데, 이제 그런 기회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 무학여고 2학년 안혜리(16)양도 비슷한 평가를 했다. 안양은 “내신 경쟁을 좀 줄여줬으면 좋겠는데 교육 정책은 반대로 가는 것 같다. 내신 1.5등급 이내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2등급까지는 서울 소재 대학에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친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이런게 더 심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설문에 참여한 학생들은 수능 절대평가에 반대하는 이유로 “내신 경쟁이 심해지고 관련 사교육이 늘 것”(65.3%), “대학이 면접 등을 강화해 대입 준비 부담이 늘 것”(51.4%, 복수 응답)을 꼽았다. 부분적 절대평가 도입인 1안을 지지한 학생들은 2안의 부작용으로는 ‘대입 면접 강화 등 준비 부담’(54.4%)을 우려했다. '일부 과목은 상대평가를 유지해야 공정한 경쟁과 평가가 될 수 있다'(51.3%)라는 의견도 높았다.

한편 2안을 선호한 학생들(27.9%)은 그 이유로 ‘수능 경쟁 완화 등 절대평가의 원래 목적을 살리기 위해’(59.1%), ‘국어·수학이 상대평가로 있으면 관련 사교육이 늘 것’(52.3%, 복수 응답) 등을 꼽았다. 경기 의왕시 백운중 3학년 한지유(14)군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수능 공부보다는 동아리·독서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내 꿈을 찾는 데 더 시간을 들이고 싶다. 모두 절대평가로 바꾸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청소년들의 말말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교육부가 1,2안 중 무엇을 선택하든 내년 고1부터 신설되는 통합사회·통합과학은 수능 응시 과목으로 포함돼 절대평가가 적용된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설문에 응한 학생 중 64.4%는 두 과목에 대해 “수능에 포함해서는 안된다”고 답했다. 통합사회·통합과학은 문·이과 통합교육을 위해 내년 고1 과정(현 중3)에 신설된다.

학생들은 두 과목을 수능에 포함시키면 결국 사교육만 키울 것이라고 걱정한다. 서울 세화고 2학년 김정모(16)군은 “1학년 때 배우고 2년 뒤에 수능을 치르면 내용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며 “결국 학원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앙일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편 학생들은 수능에서 EBS 문제를 수능에 출제하는 것에 대해선 우호적이었다. 교육부는 EBS 연계와 관련해 최근 들어 “학교 수업이 EBS 문제풀이로만 흘러 수업 파행이 심각하다. EBS 연계 축소 또는 폐지 등 조정이 필요하다”며 입장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응답에 참여한 학생 중 62.5%가 ‘현행 수능·EBS 70% 연계율 유지’를 지지했다. 설문조사에서 자신을 경남의 한 일반고 2학년 학생이라고 소개한 한 학생은 “학원이 많은 서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역 학생에게는 EBS 연계가 큰 도움이 된다”고 적었다.

학생들은 잦은 입시제도 변경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심층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은 “우리를 ‘실험쥐’로 삼지 말아 달라”며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부터 마련하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정환(고양 대진고 1)군은 “대입에서 학생부 위주 전형이 확대 되면서 고교에서 내신 경쟁이 너무 치열해 부담이 크다. 수능 절대평가를 도입한다면 고교 내신 부담을 낮춰달라”고 주문했다. 한지유(의왕 백운중 3)군은 “통합사회·통합과학은 한국사처럼 확실하게 쉽게 나올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포스트]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