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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매경포럼] 한국자동차산업의 진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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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수십 년간 세계 럭셔리 자동차 시장을 호령했던 독일 자동차 메이커들이 아이폰 모멘트에 직면해 있다." 지난 2일 파이낸셜타임스가 전기차 선두 기업인 테슬라가 기존 자동산 산업에 불러올 파장을 보도하며 던진 메시지다.

아이폰이 휴대폰 시장에서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노키아와 블랙베리를 무력화했던 것과 같이 테슬라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게 요지다. 자동차 동력이 내연기관에서 전기로 바뀌면 산업 생태계도 변화할 것인데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가장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는 독일 자동차조차도 한 방에 갈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할 수 있다.

거리에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자동차가 가솔린과 디젤차이고 전기차는 거의 보이지 않는데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유럽 각국과 중국, 인도가 제시한 친환경 정책의 청사진을 보면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얘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은 지난해 이미 화석연료 자동차를 2030년까지 퇴출시킨다는 법안을 의결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최근 2040년까지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과 인도 역시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지난 7일 우리 국회에서도 2030년까지 내연기관 차량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과 결의안이 제출돼 주목받았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정말 종말을 맞을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세계 자동차 산업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올 들어 자동차 판매가 급격히 줄고 있는 것도 그 징후 중 하나다. 최근 10년간 세계 자동차 생산은 3%대 증가율을 가까스로 유지했는데 올해는 1%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과 유럽 자동차 판매가 줄고 신흥 시장 성장세도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전체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데도 전기자동차 판매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플러그인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전기차 판매 대수는 46만8274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3% 증가했다. 시장의 판도 변화를 말하기에는 절대량이 미미하지만 전기충전소 등 기반시설이 갖춰지고 생산단가가 계속 낮아지고 있어 시장 잠식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것이다. 한 번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는 등 전기차 성능이 급속히 좋아지고 있는 것도 내연기관 자동차의 입지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자동차 업체들이 더 주목해야 하는 현상은 '자동차'라는 상품에 대한 인식 변화다. 미국의 우버와 리프트, 중국의 디디추싱 등 차량 공유 업체들은 자동차 소유를 불필요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 업체는 운행되지 않고 주차장 공간만 차지하거나 혼자만 타고 다니는 자동차만 줄여도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는데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자동차 공유 개념의 확산은 결국 자동차 수요를 위축시킬 소지가 크다.

그렇다면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이런 변화에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까.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차 개발 분야를 보면 세계적인 추세에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지만 선발 업체를 추격하는 수준이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한국 반도체와 스마트폰과는 대조적이다. 패러다임이 바뀌어 위기가 몰려오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이 먼저 타격을 받기 마련인데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그런 처지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요즘 자동차 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보면 이미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7년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고 5개 완성차 업체 세계 시장 점유율도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노조는 과도한 성과급과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강행하고 경영진도 기존 방식으로 대응하며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이다. 여기에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과 한국GM의 철수설 등 돌발 악재까지 널려 있다. 진짜 위기는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헤매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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