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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태평로] 공무원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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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소득·연금·복지 혜택 떠받치는 건 모두 세금인데

민간 추월해 특권계급화 수준… 특혜 안 줄이면 민간 활력 저해

조선일보

조중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취임한 지 3개월도 안 된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7일간 연차 휴가를 썼을까. 알고 보니 문 대통령은 21일의 연차를 갖고 있었다. 과거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국회의원을 지낸 기간을 합쳐 공무원 재직 기간이 6년이 넘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연차는 단절 기간이 있더라도 모두 합산한다고 한다. 일반 직장인들에겐 언감생심이다. 이직하는 순간 연차는 제로다.

공무원이 박봉이라는 것은 옛말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임금 근로자의 절반 정도(45.2%)가 월급 200만원이 안 된다. 그런데 올해 공무원의 평균 월급(기준소득월액)은 510만원이다. 연봉으로는 6120만원. 공무원(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행정 분야)은 월급 400만원 이상 고임금자 비중(27.2%)도 높다. 17개 산업 직군 중 공무원보다 더 높은 것은 전문·과학 기술 분야, 금융·보험업, 출판·영상·방송통신·정보서비스업 3개뿐이다.

특히 부러운 건 연금이다. 해외 유명 관광지 패키지 여행객을 모으면 퇴직한 공무원과 교사 부부가 많다는 건 여행업계에서 공공연하다. 프리미엄급 패키지일수록 그 비중이 더 높다고 한다. 연금 덕이다. 부부가 모두 퇴직 공무원이거나 교사일 경우 합산 연금이 월 700만원인 경우가 흔하다. 작년 공무원연금 최고액 수령자의 경우 월 700만원 정도를 받았다. 국민연금 최고액 수령자는 월 193만원이었다. 공무원연금 제도를 개혁했지만 이 격차는 여전하다. 공무원과 민간 직장인이 2016년부터 각각 월 300만원 고정소득으로 30년간 연금에 가입했다고 단순 가정할 경우, 예상 연금 수령액은 공무원은 월 208만1440원, 국민연금 가입자는 월 80만1700원이다(김형모 '누가 내 국민연금을 죽였나' 저자).

작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17명까지 떨어졌다. 팍팍한 현실에 젊은 부부들이 사실상 '출산 태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세종시는 1.82명이다. 서울(0.94)보다 배가 많다. 광역시·도 가운데 압도적인 1위다. 2위부터 6위까지는 모두 빽빽하게 1.4명대에 몰려 있는데 공무원의 도시 세종시만 홀로 우뚝하다. 생물종으로서의 인간이 가진 자손 번식이라는 근본적인 욕구 충족에서도 공무원은 월등한 조건을 누리고 있다는 뜻이다.

조선일보

6월25일 오후 서울 세종대학교에서 한 입시 전문 업체 주최로 열린 9급 공무원 시험 합격전략 설명회에 많은 인파가 몰렸다. /오종찬 기자


한국에서 공무원은 특권 계급화돼가고 있다. 철통같은 직업의 안정성, 장시간 근무에서 벗어난 일과 삶의 균형, 평균을 상회하는 생애 소득, 고령화 시대의 노후 보장.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많은 문제가 공무원에겐 예외다. 여기에다 출산·육아휴직, 대체·임시휴가 확대 등 좋은 것은 모두 '공무원 먼저 시행'이다. 청년들이 바보라서 공무원 시험에 몰려드는 것이 아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취업시험을 준비하는 청년 열에 넷이 공시생이다. 일반 기업체 준비생보다 더 많다. 기가 막힌 현실이다. 생산하려는 자보다 관리하려는 자를 더 많이 만드는 사회로 가고 있다.

공무원의 그런 특권을 떠받치는 비용은 한 푼, 한 푼이 모두 세금이다. 그 특권이 딛고 있는 현실에는 수개월 또는 1~2년 단위로 고용 불안에 떠는 700만 비정규직, 월 200만원도 받지 못하는 900만 저임금 근로자들의 인생도 있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특권 계급자의 수를 더 늘리려 한다. 특권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오히려 전 정권에서 진통 끝에 진전시켜놓은 성과연봉제와 성과평가제마저 없던 일로 돌리고 있다. 국민이 아니라 특권자들의 이익집단인 공무원노조 비위를 맞춘 결과다.

민간의 일자리 동력이 약화되고 있어 공공 부문이 선도해야 한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자영업이라도 생업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안다. 공무원 한 명이 곧 규제 하나라는 걸. 그래서 공무원 증원은 민간의 일자리 창출 능력을 더 약화시킬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없으려면 공무원의 과도한 특권을 줄이는 '진짜 개혁'을 병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세금 써서 공무원 천국을 만들게 된다.

[조중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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