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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일사일언] 선 넘는 ‘디스’를 경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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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음악에서 랩을 통해 상대를 공격적으로 비판하는 행위를 ‘디스’라고 부른다.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의 디스리스펙트(disrespect)에서 따온 것이다. 랩 가사로 전쟁처럼 맞붙는 모습에 ‘디스전(戰)’이라 하고, 누가 더 기발한 한 방을 날렸는지에 따라 승패를 정하기에 ‘랩 게임’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난 두 달간 힙합의 본고장 미국에서 각각 상업성과 예술성을 대표하는 두 거물급 뮤지션이 한판 붙었다. 지난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드레이크, 그리고 사회적 목소리를 내며 래퍼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켄드릭 라마가 그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누가 정상인지를 두고 벌어진 말다툼이었다. 하지만 점점 분위기가 격해지면서 가정 폭력, 약물 중독, 성 착취 문제 등 사생활 폭로전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최근엔 범인 미상의 총격으로 드레이크 측 경호원이 다치는 일까지 발생했다. 1990년대 디스전이 동·서부 지역 힙합 전쟁으로까지 번졌던 투팍과 비기의 양상을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했다. 당시 둘의 디스전 역시 각종 폭로전으로 갈등을 빚었고, 투팍이 갑작스레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끝을 맞았다.

한국에서는 개그 유튜버 채널 ‘뷰티풀너드’에서 만들어낸 래퍼 그룹 ‘맨스티어’가 화제다. 이들은 힙합의 과시적인 면을 부각시킨 캐릭터들을 만들어내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보다 못한 래퍼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한 힙합 가수가 ‘대체 어디까지 허락되는 거야, 풍자?’ ‘지켜줘 문화에 대한 존중, 그 선을 넘으면 그땐 머리에 조준’이라는 가사로 선 넘는 풍자를 지양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들의 디스전이 이목을 끌며 각종 검색 순위와 차트 상단을 점령했다. 덕분에 힙합에 간만의 활기가 돌기도 했다. 하지만 자극적인 욕설, 인신 공격을 퍼붓는 댓글과 이에 동조하는 반응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과거에도 힙합은 디스전을 토대로 질적인 발전을 해왔다. 다만 분위기가 과열되면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기 쉽다. 소모적인 가십거리와 맹목적 비난보다 성숙한 대화로 끌어나갈 필요가 있다. 결국 힙합의 본질은 거기에 있다.

[장준환 대중음악웹진 이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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