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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서소문 포럼] 누가 검사들을 줄세우기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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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검찰 인사는 14년 전 노무현 정부 출범 때와 닮은꼴

기수·서열 파괴 인사, 검찰 장악시도로 의심받지 말기를

중앙일보

조강수 논설위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2003년 3월 11일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그날 발표된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 서울고검 차장으로 발령 난 장윤석(전 새누리당 의원) 법무부 검찰국장이 찾아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서열 파괴라는 미명하에 선배를 후배 밑에 앉히는 것은 나가라는 협박일 뿐이다. 불명예를 택하기보다 인사 조처의 총탄에 맞아 죽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목소리가 비장했다. 갓 출범한 노무현 정부가 ‘검찰 개혁’을 기치로 단행한 38명의 검사장에 대한 물갈이 인사 중 하나였다. 야당은 “인사권을 남용해 검찰을 길들이려는 술수”라고 비판하며 ‘검찰 학살의 날’로 규정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단행된 일련의 검찰 인사를 볼 때마다 그때 그 장면이 떠올랐다. 정권 교체 직후 소위 ‘잘나가던’ 엘리트 검사들이 단칼에 낙마하는 걸 보면서 정권 교체의 엄중함과 권력의 서늘함을 실감했다. 검찰총장을 포함해 검사의 명운이 정권의 향배와 직접적 관련이 있음도 알았다. 영화 ‘더 킹’에서 전략수사부 소속 한강식 검사가 대선 때 무당을 찾아가 어느 후보 라인을 탈지 점쳐 보거나 특정 후보가 당선되지 않게 굿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허구만은 아닐 수 있다고 느꼈다.

그때와 최근 검찰 인사는 유사점이 많다. 인사의 명분이 ‘검찰 개혁’인 점과 그 내용이 ‘강도 높은 서열 파괴’라는 점이 그렇다. 검찰을 관장하는 투 톱(청와대 민정수석-법무부 장관)이 검찰 출신이 아니라는 점도 같다. 당시엔 재야 변호사 출신 문재인-판사 출신 강금실, 지금은 비법조인 출신 조국-박상기 체제다. 개혁의 속도감과 강도, 체감온도도 비슷하다. 노 전 대통령은 김각영 검찰총장의 사표를 받았다. 동요하는 검사들을 달래려고 ‘검사와의 대화’ 이벤트까지 했다. 검사들이 ‘맞짱’을 뜨는 바람에 스타일은 구겼지만 말이다.

미완에 그친 검찰 개혁의 한을 풀려는 듯 문 대통령은 이전 정부에서 한직을 떠돌던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장 발탁을 직접 발표하는 파격도 마다하지 않았다. 검사장급 이상 인사에선 36명을 승진·전보시켰다. 박근혜 정부 사람으로 찍힌 검사장 등 10명 이상이 사표를 냈다. 한 검사장은 요즘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분을 삭이지 못한다고 한다. 25년 이상을 국가를 위해 봉직했음에도 적폐 세력으로 낙인찍혔는지, 인사 나기 10분 전에 내용을 통보받았다는 것이다.

지난주 검찰 중간급 간부 인사에선 사법시험 기수 파괴의 폭이 검사장급 인사 때보다 더 커졌다. 특수부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자리에 전임자의 5기수 후배가 발탁된 일의 상징성은 크다. 신임 3차장은 서울시내 동·남·북·서부지검의 차장검사들보다 세 기수 아래다. 3차장은 물론이고 형사·공안 사건을 지휘하는 1, 2차장에도 특수통이 임명된 것 역시 이례적이다. 특수통의 전진배치는 검찰권 견제를 위해 경찰에 수사권을 상당 부분 이양하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하겠다는 현 정부의 입장에 역행한다. 취임사에서 “특수수사를 축소하겠다”고 밝힌 문무일 검찰총장의 다짐과도 배치된다. 검찰 내부에서는 “서열·전공 파괴도 어느 정도껏이지 일거에 5기수를 뛰어넘은 건 검찰 조직에 주는 충격이 너무 크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래서 물갈이 인사의 목적이 검찰 조직을 장악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이전 장윤석의 사례와 달리 이번에는 공개 반발하는 검찰 간부는 보이지 않는다. 검찰이 ‘개혁 대상 1호’로 지목된 마당이라 반박할 명분이나 힘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 세력이 검찰을 개혁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인사를 통해 사람을 바꾸는 것과 제도 개선을 통해 조직을 혁신하는 것이다. 이번 검찰 인사에 대해 정부는 “개혁 차원의 교체 인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게 멀쩡한 검사들을 또 다른 줄에 세우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5년, 10년 뒤에 누가 ‘물갈이 대상’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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