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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시론] 다주택자는 부동산 정책의 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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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자에 임대사업 권하지만

혜택 적고 부담 커 기피 분위기

비과세 확대, 준조세 제거 통해

자산가를 임대사업자로 키워야

중앙일보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8·2 부동산대책 이후 열흘 남짓 됐다. 주택시장은 혼란과 충격 속에서 거래가 끊긴 느낌이다. 시장은 일시 정지된 상태다. 6·19 대책을 주택시장이 교만하게 대했다가 화를 부른 것 같다. 이번 대책은 집을 투자가 아닌 거주 대상으로 생각하라는, 또 투기 수요를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결연한 의지를 담았다.

그러면서 집 여러 채를 소유한 사람들을 주택 투기의 주범으로 보고 다주택자와의 전쟁을 예고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금을 제한하고 양도세 중과세와 분양시장 접근 차단, 엄한 세무조사 등 가용한 압박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은행까지 다주택자의 추가 대출을 압박할 태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본인이 사는 집이 아닌 것은 다 팔라”고 권했다. “집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불편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상황이라 다주택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다주택자는 약 188만 명이다. 투기적 성향을 가진 다주택자를 변호하고 싶지 않지만 일반 다주택자의 순기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주택자는 정부 역할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유일한 파트너다.

우리 사회에는 임대료도 부담하기 어려운 가구가 있고, 임대료 부담은 가능하나 자력으로 집을 사기 어려운 가구도 있다. 이러한 가구를 위해 정부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많은 노력을 해 왔다. 매년 저소득층을 위해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서민 전세자금 대출, 내 집 마련을 돕는 보금자리론 등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늘 역부족이었다. 2015년 말 현재 공공 임대주택 재고량은 125만7000가구로 전체 임대용 주택의 약 13.7%를 차지한다. 나머지 86.3%는 민간 임대주택에 의존하는 것이다.

중앙일보

우리나라의 자기 집 보유율은 지난해 현재 62.2%다. 미국 67.4%(2009), 프랑스 58%(2010), 독일 41.8%(2010), 일본 61.1%(2008) 등 주요국의 수준에 비해 낮지 않다. 모든 가구가 자기 집을 한 채씩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불가능한 일이다. 어느 나라도 자가 보유율이 70%를 넘지 못한다.

결국 서민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모든 무주택자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거나 자가 마련을 위한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 실패가 주기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민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고민을 정부는 안고 있다. 여기에서 다주택자들이 정책 실패를 보완할 조력자로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다주택자 사이가 좋지 않다. 정부는 다주택자들이 주택시장의 물을 흐린다고 생각한다. 일부 투기적 성향을 가진 다주택자들이 다주택자 전체를 죄인 집단으로 만들고 있다. 부동산정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려면 투기 수요를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여유 있는 자산가들을 사업형 다주택자로 양성하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주택자들을 정부의 조력자로 키워야 한다. 베이비부머 은퇴가 가속화하면서 많은 이가 주택임대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개인 등록 임대사업자의 절반 정도가 노후대책을 겨냥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세 자영업, 주식 투자 어느 것도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걸 다들 안다. 마땅한 투자처 없는 시장 여건이 많은 중장년층으로 하여금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다주택자들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며 자발적으로 임대사업자 등록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다주택자들의 사회적 책무를 요구하려면 정부가 팔을 더 크게 벌릴 필요가 있다. 등록 임대주택이 46만 가구에 불과한 건 임대주택 등록으로 기대되는 혜택보다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등록하면 정부 규제는 늘어나는데 상승하는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미 등록한 사업자들도 준조세 등 소득 노출에 따른 부담으로 임대사업을 그만두고 싶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한 등록 임대의 혜택이 6억원 이하 주택에 집중돼 있는 것도 불만 요인이다. 정부가 제도권 임대주택 확충과 공정과세 기반 마련에 민간의 힘을 동원하려면 등록 임대 지원 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다주택자에게 ‘구애’를 할 정도가 돼야 한다.

비과세 조건을 확대하고 준조세 부담을 과감하게 제거해 줘야 한다. 등록 임대주택을 9억원 이하 주택까지 확대하는 등 포괄적 지원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임대주택사업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기금 지원과 대출 보증 등 자금 조달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 다주택자에게 사회적 책무를 기대할 수 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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