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2 (수)

[편집국에서] 과거뉴스, 가짜뉴스, 희망뉴스 / 이재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이재명
디지털 에디터


한바탕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뜨거웠다. 지난 8일 오전부터 ‘[속보] 8월14일 임시공휴일 지정…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라는 제목을 단 <한겨레> 기사의 페이지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부가 예고 없는 발표를 했나 싶어 확인에 나섰으나 아니었다. 편집 과정의 실수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아찔해지기까지 했다.

상황을 어림짐작하게 된 건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경축 분위기를 확산하고 국내 관광 지원을 통한 내수진작과 경제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라는 첫 문장을 읽고 나서였다. 철 지난 과거 기사였다. 2년 전인 2015년 8월4일,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당시 금요일이었던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안도와 함께 허탈함이 밀려왔으나 정작 네티즌들의 광클릭은 꼬박 하루 반나절 동안 계속됐다.

어쩌다 이런 소동이 벌어졌는지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올해 14일은 월요일이다. 임시공휴일이 되면 4일간의 연휴를 즐길 수 있게 된다. 기대를 품은 누군가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포털사이트에 ‘8월14일’을 입력하자 자동완성기능을 둔 검색창은 ‘8월14일 임시공휴일’을 생성했을 것이다. 그렇게 검색된 기사 중 ‘[속보] 8월14일 임시공휴일 지정~’이라는 제목이 단박에 눈에 들어왔으리란 건 안 봐도 비디오다.

뉴스 소비자는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거나 원하던 내용일수록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한다. 그토록 바라던 뉴스가 ‘속보’로 떴으니 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 벅찼으리라. 한달음에 단톡방과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 공유하려 나섰을 테고, 낭보는 ‘좋아요’와 ‘클릭’을 통해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뒤늦게나마 날짜를 확인하고 ‘낚였다’는 걸 알게 된 이들도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억울함에 퍼나르기를 거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희망뉴스와 과거뉴스가 착종되면서 의도하지 않은 가짜뉴스가 만들어졌다. 물론 이번 사례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뉴스와는 전혀 다르다. 허위나 거짓 정보를 담거나 정보 생산자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유통되고 소비되는 양상과 매우 닮았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했던 카이사르의 말은 이제 ‘확증편향’이라는 전문용어로 대체할 수 있다. 뉴스 이용자들이 정보의 정확성이나 객관성과 무관하게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성향을 일컫는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뉴스는 헌신짝처럼 버려지기도 한다. 이런 정보 편식은 가짜뉴스가 판치는 터전을 제공한다.

언론도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과거 한 꾸러미로 배달되고 읽히던 종이신문과 달리 온라인 기사는 낱낱이 쪼개져 유통·소비된다. 여기에 시공간이 극도로 응축된 디지털 공간은 몇십년 전의 기사도 손쉽게 불러낼 수 있다. 온라인 독자들의 혼동을 최소화하려면 시의성이 지난 기사에서 ‘[속보]’라는 표현을 떼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단지 날짜만 표기하던 종이신문의 기사 작법을 고수할지도 고민의 대상이다.

결국 이번 소동은 지난 9일 오후 국무조정실이 “14일 임시공휴일 지정은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하면서 일단락됐다. 이로써 무더위와 일상에 지친 이들이 염원하던 임시공휴일 지정도 한여름밤의 꿈으로 그치게 됐다. 귀책 사유는 없지만 <한겨레>의 과거뉴스를 통해 얻었던 희망이 물거품으로 변한 건 애석한 일이다. 앞으로는 과거가 아닌 최신뉴스로 희망을 배달하겠다는 다짐으로 미안함을 대신한다.

miso@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 페이스북]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