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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시론]한·미 FTA ‘재협상’ 논란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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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미국 측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 개최 요청에 공식적으로 답변함으로써 한·미 FTA 재논란이 본격화되었다. 여태껏 트럼프 대통령이 앞장서 ‘재협상’ 신호탄을 쏘고, 미 무역대표부가 실무지원하는 모양새였다. 미 무역대표부가 선택한 경로는 협정문 22.2조였다. 그 4항은 이렇다. “양 당사국이 달리 합의하지 아니하는 한 공동위원회는 다른 쪽 당사국의 영역에서 개최되거나 양 당사국이 합의하는 장소에서 개최되는 것으로 하여 어느 한쪽 당사국의 요청 후 30일 이내에 특별 회기로 회합한다.”

경향신문

특별회기(special session) 요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요청이 있으면 반드시 응해야 하는 의무(shall) 조항이다. 그리고 위 7월12일자 공식서한에서 밝힌 특별회기 소집목적은 이렇다. “협정의 개정과 수정을 포함하여 협정운용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논의”하는 것이다. 이 특별회기와 “후속협상들(follow-on negotiations)은 협정이행의 진전 상황을 검토하고, 미 수출상품의 한국 시장접근에 관련된 다수의 문제들과 그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미국의 심각한 무역불균형을 해결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여기서 한·미 FTA 협정문 22.2조 3항 다를 보자. “3. 공동위원회는 (…) 이 협정의 개정을 검토하거나 이 협정상의 약속을 수정할 수 있다.” 이제 트럼프가 말한 한·미 FTA 재협상의 틀이 보이기 시작한다. 곧 기본적으로 한·미 FTA 협정문 22.2조에 의거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소집 협정문의 ‘개정(amendments)’과 협정문상의 ‘약속(commitments)’ 곧 각종 서비스무역상의 시장개방 양허안이나 관세양허표 등을 수정(modifications)하기 위한 일련의 ‘후속협상’.

여기에 대한 우리 정부 측의 지금까지의 대응은 주로 뒷걸음치기로 보인다. 트럼프의 ‘재협상’ 주장에 대해 그 의미를 축소하기 위해 애써 ‘개정협상’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 한 예다. 협정문상 공동위의 기능이 협정문의 ‘개정’뿐만 아니라 ‘수정’도 포함하기 때문에 벌써 그 협상 범위에 있어 차이가 나는 셈이다. 반면 특별회기 개최장소는 협정문상으로 이미 “달리 합의하지 않는 한”, “다른 쪽 당사국의 영역”이 우선하므로 우리가 미국 측이 제안한 워싱턴으로 가야 할 어떤 의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 특별회기 및 후속협상이 과연 얼마나 걸릴지, 그리고 ‘개정과 수정’의 규모가 곧 소폭, 중폭, 대폭 중 어디가 될지 현재로선 예측하기 쉽지 않다. 양측이 개정 및 수정에 합의해 후속협상에 들어갈 경우 우리는 통상절차법에 의거 타당성 검토나 공청회 국회보고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마찬가지로 미국 측도 무역촉진권한법에 의거 개시 90일 전에 의회보고, 공청회, 개시 30일 전 협상목표 공개 등의 절차가 있다. 기나긴 본 협상이 마무리된 뒤에도 발효 절차가 남아 있다.

그렇다면 개정 및 수정 규모는 어떨까. 얼마 전 미 무역대표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목표를 발표했다. 명시적으로 ‘재협상’임을 밝힌 이 협상의 목표에는 디지털경제조항 추가, 노동환경조항 강화, 불공정 보조금 삭제, 국영(공)기업의 불공정관행 제거, 지재권 강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트럼프가 폐기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과 관련해 과거 그 선결 조건으로 논의되었거나 미 무역대표부 국별 무역장벽보고서 등이 참고가 될 수 있다. 즉, 한·미 FTA에는 빠졌지만 TPP 협정문에 추가된 것들을 한·미 FTA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환경 관련 조항, 국영(공)기업, 각종 규제철폐와 완화에 관련된 챕터 등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미국 측은 지재권 대폭 강화를 요구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자동차연비, 원산지증명 간소화, 금융정보 해외이전, 유기농식품 인증, 산업은행의 산업보조금, 우체국, 농협, 수협 규제, 약제비절감조치, 동반성장위원회, 구글지도 허용 등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한·미 FTA 관련 미국의 협상목표는 ‘심각한 무역불균형’ 해소라는 다분히 최대주의적 방향으로 갈 공산이 크다. 자동차와 철강이라는 한·미 FTA와 사실상 무관한 품목을 대미 상품무역흑자와 연결시키는 것 자체는 다분히 억지스럽다. 이는 트럼프 정부의 지지기반인 러스트벨트 백인노동자를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을 여기에 묶어 놓고 특히 서비스분야를 공략할 우려도 있다.

그래서 보자면 협상기간은 단기, 중기, 장기로, 협상규모는 소폭, 중폭, 대폭으로 이 각각에 다 대응할 정교한 시나리오와 전략이 있어야 한다. 실상 남는 거 없는 한·미 FTA, 더 뜯기는 것이 우리로선 최악이다.

<이해영 |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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