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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정태명의 사이버 펀치]<25>관리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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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두 명의 강남세무서 직원이 수개월 동안 세무 조사를 마치고는 마지막 말문을 연다. “조사 받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희에게 맡겨진 업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무리한 일이 있었으면 용서를 바랍니다.” 조사원의 정중한 입장 표명은 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이해의 문을 열게 했다. 급하게 달려와 준 119 소방대원의 한마디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 일을 맡겨 주신 국민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당연한 얘기였을지라 해도 관리를 맡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흐뭇함과 함께 믿음직함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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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관리자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리의 목적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관리 권한의 남용이 위탁 관계라는 기억을 지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행정 편의'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위탁자(주인, 오너)가 효율 또는 편리하게 혜택을 누릴 수 있음에도 관리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행정 편의로 인해 법과 규제가 강화되고 정책이 천편일률로 일관, 주인을 속박하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행정 업무 지원을 받으려고 연락하면 “담당자가 돌아온 후에 다시 전화하라”는 답을 듣는 적이 종종 있다. 관리인이 주인에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물론 시스템에 의존하기보다는 사람 위주로 관리하는 방식이 낳은 결과이긴 하지만 주인으로서는 짜증나지 않을 수 없다. 치안과 국민의 안전 관리자인 경찰이 밤길 한가운데서 길을 막고 음주 단속을 한다. 물론 불특정 행인을 무조건 불심 검문하는 것에 비해서는 훨씬 나아졌지만 자신의 주인을 잠재 범죄자로 여기고 검문하는 것은 주인을 대하는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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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학생을 교육시키고 교수가 연구하는 집단 조직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행정 편의가 교육을 앞서고, 연구를 앞선다. 우수한 교수를 영입하는 목적이 훌륭한 전문가 양성임에도 경제 수익과 실적 달성이 교수 채용의 기준이 되고 있다. 과학기술논문색인(SCI) 논문 등 외부 평가에만 얽매임으로써 대학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언제 우리는 대박 연구로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는지 우려된다.

언론은 스스로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과연 직사(直寫)하는 언론, 사실과 다르게 만들어 낸 기사,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언론, 자신의 정치 및 경제 이득만을 위해 몸부림치는 언론이 과연 국민을 위한 존재인지 궁금하다. 인터넷 발달로 언론의 품질이 망가졌기 때문인지 언론의 속성이 원래 주인을 넘어서는 것이기에 그런지 궁금하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주인이 관리자의 이러한 행위를 묵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촛불을 들어 관리인을 내친 적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이 주인인 것조차 잊고 산다. 이제라도 위탁자는 자신이 주인임을 자각하고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관리인의 행위와 결과를 눈여겨보고, 칭찬과 질타를 아끼지 않는 것은 주인의 의무다. 앞으로는 4차 산업혁명의 결과로 많은 관리 업무를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담당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대로 4차 산업혁명을 받아들이면 로봇이 사람 위에 군림하고, 관리의 규칙을 만드는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 지능정보 사회에서 로봇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관리자와 주인의 관계가 바르게 정립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헤아릴 때다.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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