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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뉴스AS] 도로 위 폭탄 ‘과로 버스’…기사 탓만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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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부고속도로 6중추돌사고 이후 버스기사들 근무환경 재조명

하루 16~18시간씩 운전대…근로시간 노사합의도 안 지켜져

“신규 채용보다 연장 근로 임금이 더 싸게 먹혀”

무제한 연장근무 허용하는 ‘근기법 59조’ 개정해야



지난 9일 서울시 서초구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신양재나들목 인근에서 경기 오산의 오산교통 소속 버스 기사 김아무개(51)씨가 몰던 광역버스가 승용차 등 차량 6대를 잇달아 들이받는 사고를 냈습니다. 버스에 직접 들이받힌 승용차(K5)에 탑승해 있던 50대 부부가 숨졌고, 16명이 다쳤습니다.

숨진 50대 부부가 손주 출산을 3개월 앞두고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는데요. 처음 사고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의 운전기사를 향한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살인죄로 가야 하는 거 아니냐. 어찌 저리 무책임하냐. 살인자”(r*****), “졸음운전 예방 위해서 사망사고 내면 징역 10년 이상 때려야 한다”(s*****), “대형차 운전하시는 분들 각성좀…사람 죽여놓고 감옥 가면 다인가”(y*****) 등의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사고를 낸 버스기사 김씨가 회사쪽이 요구하는 ‘무리한 스케줄’을 따르고 있었다는 정황이 밝혀지면서 여론은 반전됐습니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버텨내고 있는 버스 기사들의 사연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정부와 국회에서는 급하게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현재도 우리 주변에는 ‘과로 버스’가 달리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버스 졸음운전 사고의 ‘주범’이라고 지목되고 있는 버스 기사들의 근무 환경은 얼마나, 왜 열악할까요? 업체와 관리 당국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책임있는 조치들을 내놓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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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봉평면 진조리 영동고속도로 둔내터널 인근에서 고속버스가 앞서가던 승합차를 추돌해 승합차에 타고 있던 4명이 숨지고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강원지방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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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가 무서워요”…버스는 왜 도로 위의 폭탄이 됐나

버스 기사의 ‘부주의’에 따른 사고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 7월 강원 평창군 용평면의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관광버스 운전 기사의 졸음 운전으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던 20대 여성 4명이 사망했습니다. 지난 5월에도 봄꽃을 보러 가던 70대 노인 4명이 강원 횡성군 둔내면 영동고속도로 둔내터널에서 졸음운전 버스에 의한 연쇄추돌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처럼 버스 사고가 버스 기사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고, 특히 무분별한 끼어들기·위협운전 등 일부 버스 기사들의 ‘안하무인’ 운전 태도도 도마에 오르면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버스 혐오’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급기야 일부 누리꾼들은 ‘버스 공포증’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고속도로 운행 중 버스 등 대형차를 만났을 때 운전자들이 느끼는 공포감을 표현하는 ‘하이웨이 포비아’라는 신조어도 등장했습니다.

무엇이 버스를 도로 위의 폭탄으로 만들었을까요? 과로 버스의 과속을 불러오고 있는 ‘주범’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 쉬지 못하는 버스 기사들…의무 휴식제는 ‘먼 얘기’

공개된 광역버스 운전자 김씨의 근무 일지에 따르면, 김씨는 거의 쉴 틈 없이 운전을 반복했습니다. 사고 전날(8일)에는 총 18시간 30분을 일했고, 5시간 30분을 자고 사고 당일(9일) 다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그보다 앞선 5일 6일에도 모두 출근해 평균 16시간 이상 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2월에는 ‘봉평터널 사고’를 기점으로 버스 기사들의 격무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법)이 개정되기도 했습니다. 여객법에 따르면, 버스의 경우 1일 운행 종료 후 연속 휴식시간 8시간을 보장해야 합니다. 1회 운행 후 최소 10분 이상·2시간 이상 운행 시 15분 이상 휴식 시간을 부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법은 개정됐지만 점검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앞선 4월에는 18일 동안 297시간, 5월에는 19일 동안 313시간 30분, 6월에는 19일 동안 313시간 30분을 운전했습니다. 오산교통 노사가 합의로 정한 근로시간(16시간30분)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더블 근무’라고 하는 업계 관행도 드러났습니다. 보통은 하루 걸러 하루 일해야 하는 버스 기사들이 결원이 발생할 경우 대신해 근무를 하게 되는데요. 이럴 경우 한 명의 기사가 3일 연속으로 운전하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김씨는 3개월 동안 21차례나 이틀 연속 근무를 했습니다.

버스 기사들의 과로는 합법적으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버스 기사들의 1일 운전 시간은 근로기준법(59조) 특례조항에 따라 노사 합의에 의해 결정됩니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의 말을 종합하면, 버스 회사들은 협정 근로시간은 적게는 15시간 많게는 19시간에 이르기도 합니다.

버스운행 규정 위반이 발생할 경우 업체는 물론 운전자까지 처벌 받는 상황도 문제입니다. 연속 운전 및 휴게시간 위반 운수종사자는 여객법에 따라 과태료 10만원(94조)이 부과되거나, 최악의 경우 운전자의 면허가 취소(87조)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회사에 등 떠밀리고 있는 버스 기사들은 누가 지켜줄 수 있을까요?

■ ‘비용 절감’ 이유로 안전에 눈감은 버스 업체들

버스 업체의 ‘비용 절감’에 따른 안전 관리 부실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0일 경기 여주시 강천면 영동고속도로 강천터널 인근에서 빗길에 미끄러진 버스가 비상 회차로를 넘어와 반대 방향에서 마주오던 승용차를 덮치는 사건이 발생해 30대 승용차 운전자가 숨지고 함께 타고 있던 1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닳고 닳은 타이어로 인해 브레이크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미끄러지면서 분석이 유력한데요. 경찰은 무리한 비용절감 여부 등 업체 쪽의 과실도 조사 중에 있다고 합니다.

버스 기사들의 ‘임금’ 문제도 여전히 숙제입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하루 16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음에도 버스 기사들의 월급이 25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고 강조합니다. 한 광역버스 운전자는 “한 명의 버스 기사를 더 두는 것보다, 연장 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는 분위기가 업계에 만연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업체들의 ‘비용 절감’ 정책이 버스 기사들을 과로로, 사고로 내몰고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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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 주차된 고속 버스. 정용일 기자 (※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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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로 버스’ 멈춰 세우려면? ‘근기법 59조의 저주’부터 해결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차선을 벗어나면 경고음을 내는 ‘차로 이탈 경고장치’ 장착을 의무화 하는 법안 마련을 지시했습니다. 오는 18일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이동섭 국민의당 의원도 버스 졸음운전 참사 방지를 위한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전방충돌 경보장치’, ‘자동 긴급제동장치’ 등을 의무 장착하도록 하고 운수종사자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을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버스 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은 반갑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버스 기사들이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운수 업계에는 ‘근로기준법 59조의 저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사 합의를 통해 무제한 연장근무를 할 수 있게 하는 버스 기사 졸음운전의 주범인 셈입니다. 이를 방치한 상태에서 나온 대책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내 목숨과 맞바꾸고 싶다”.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낸 버스 기사 김씨가 유족에게 전한 말입니다. 일부 버스 기사들의 부주의로 인해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가 더이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그에게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당연히 버스 기사들도 안전 운전함으로써 시민들의 버스 공포를 줄이기 위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발생할 버스 졸음운전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버스 기사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요?

유덕관 기자 yd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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