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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김동춘으로 읽는 ' 절반의 민주주의'와 그 '반의 반의 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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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행동하는 학자, 시민 사회와 지식 사회를 이으며 한국 사회를 끝없이 탐구한 학자로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지난 1990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쓴 글 중 가려 뽑은 28편을 모은 비평집 <사회학자 시대에 응답하라>(돌베개 펴냄)가 나왔다. 매 해 한 편의 글만을 뽑은 이 책은 자연스럽게 당대의 시대상을 재조명하고, 그로부터 현대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

김동춘 교수는 그간 '전쟁정치' '기업사회' 등의 개념어를 통해 한국만이 가진 문제를 우리의 문제의식으로 풀어냈다. 서구 사회과학을 일방적으로 추종해서는 결코 한국적인 어떤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같은 접근법이 김 교수의 연구 활동을 자연스럽게 길거리와 융합케 했다.

그간 그가 강단뿐 아니라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참여사회연구소 소장,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 다른백년 연구원장 등의 다양한 직함을 갖게 된 연원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비평집을 읽다 보면 '김동춘의 시각'에서 자연스럽게 당대를 조망하게 되는데, 흥미로운 건 그가 과거에 쓴 글이 현대에도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점이다. 비평집의 첫 번째인 그의 1990년 글 '서구 중심주의 사회학을 넘어'에서부터 이 점은 확연히 드러난다. 소장파 학자였던 당시 김 교수는 1980년 피로 물든 광주를 소환하며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국가가 시민사회를 압도하여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극도로 제한"한 한국에서 국가가 설 자리가 없는 서구식 사회학을 도입하는 건 잘못된 가정으로 내린 처방일 뿐이라고 진단한다. 애초 서구식 시민사회가 형성된 적 없는 한국적 특수성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한국에 맞는 사고의 길이 열리고, 그에 걸맞은 각종 대안이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이라고 얼마나 다른가. 이 글로부터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새로운 세대는 어쩌면 과거 세대에 비해 국가주의의 망령에서 자유로운지 모른다. 하지만, 외환위기 체제 이후 한국 사회를 전복한 신자유주의 체제는 시민사회 성장의 싹을 잘랐다. 시민단체가 이 글이 나오던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해졌으나, 어쩌면 그 힘은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쪽배에 불과한 수준일지 모른다. 국가가 사라진 자리는 자본이 메웠을 뿐, 그 사이 공동체는 해체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엄청난 힘은 가족이라는 근본적 공동체까지 찢어놓았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시민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점에서 1990년 한국을 바라보던 김 교수의 문제의식은 시대에 맞게 조금 손질만 한다면 지금도 유효하다.

김 교수 문제의식의 또 다른 뿌리는 한국전쟁이다. 김 교수는 지난 2015년 낸 대중 저서 <대한민국은 왜?>에서도 한국전쟁 전후 만들어진 상흔이 오늘날 한국 사회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프레시안

▲사회학자 시대에 응답하다(김동춘 지음, 돌베개 펴냄) ⓒ프레시안


이 비평집에서 김 교수의 이러한 방법론은 더 선연히 드러난다. 김 교수는 해방기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야만의 시대에 벌어진 무참한 학살이 오늘날 극우 사회로 치달은 한국을 만드는 원초적 폭력 과정이었음을 서술한다. 나아가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든 극단적 폭력을 조명해 여전히 한국은 전쟁 수행 단계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여전히 병영식 회사 문화,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총검을 숨긴 폭력적 관계맺기 문화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안다.

그 결과, 최근의 글에서도 김 교수는 '사회적 합의 경험이 별로 없는' 한국 사회가 국가와 자본 주도의 성장 지상주의와 현실 영합주의에 매몰됨에 따라 '절반의 민주주의'와 '반의반의 주권'에 머물고 말았다고 통탄한다. 김 교수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그 총체적 부실의 결과로 풀어낸다. 세월호가 우리 사회 모순의 집약체였다는 그 숱한 말을 비로소 과거로부터 역사적 맥락에 따라 선명한 줄기로 꿰어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김 교수는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초유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역설적으로 그간 우리 사회에서 부재했던 시민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김 교수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30년 만에 일어난 시민 혁명인 촛불 혁명이 이후 한국 사회 진로를 결정하리라고 전망한다.

가장 바람직한 결론은 촛불 이후 이 책에 담긴 글들이 온전히 과거의 유물로 남는 것이다. 훗날에도 이 글들이 동시대를 선명히 비추는 거울이 된다면, 그 사회가 얼마나 암울할지는 더 말할 나위 없으리라.

기자 : 이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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