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8 (수)

[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때이른 폭염에… 빨라지고 더 독해지는 ‘오존의 역주행’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미세먼지 물러가니… 이번엔 ‘조용한 파괴자’ 비상

세계일보

‘나’는 역주행의 주인공이다. 동료들이 ‘저감’이라는 대세에 휩쓸려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과 달리 나는 해를 거듭할수록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나는 무시무시하다. 사람들이 눈이나 호흡기, 피부 어디에라도 빈틈을 보이면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다. 출생과정도 복잡하고 태어난 뒤에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은밀함이 역주행의 비결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 오존은 인류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간곡히 당부한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너무 늦기 전에 나의 역주행을 막아주길.

세계일보

◆절정기 지나서 ‘특별점검’ 한다고?

올해 봄에도 대기오염계 톱스타는 미세먼지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1급 발암물질이자 시야를 뿌옇게 만드는 비주얼 요소까지 갖췄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성장세로 보면 나도 ‘떠오르는 스타’다.

2000년 연평균 오존 농도는 0.020ppm이었다. 그런데 매년 조금씩 늘어난 결과 2015년에는 0.027ppm으로 35%나 늘었다. 정부는 나를 비롯해 이산화황, 일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미세먼지(PM10), 초미세먼지(PM2.5), 납, 벤젠 8가지 물질을 ‘대기환경기준’으로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측정 기간이 짧아 비교가 어려운 PM2.5와 벤젠을 제외하면 나만 ‘나홀로 역주행’을 하고 있다.

2000∼2015년 이산화황은 37.5%, 일산화탄소는 44.4% 줄었고 말 많고 탈 많은 PM10조차 9.4%가 줄었다. 환경기준 달성률은 더 처참하다. 나는 1시간 기준 0.1ppm, 8시간 기준 0.06ppm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2015년 전국 256개 측정소 중 1시간 기준을 지킨 측정소는 130곳(50.8%), 8시간 기준을 지킨 곳은 단 1곳(0.4%)에 불과했다. 참고로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WHO는 8시간 기준만 설정해 놓고 있다.

오존주의보·경보 발령횟수 역시 2012년 66회, 2014년 129회, 2016년 241회로 급증하고 있다. 올해도 벌써 160회가 발령됐다.

세계일보

내가 다른 동료들과 달리 유독 통제가 안 되는 까닭은 ‘신비주의’ 때문이다. 나는 공장 굴뚝이나 자동차 배기구에서 바로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데서 나오는 질소산화물(NOx)과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이 햇빛(자외선)을 만나 분자가 원자로 쪼개졌다가 붙었다가 하는 과정을 몇번 거친 끝에 탄생한다. 따라서 오존 양을 통제하려면 원료물질(전구물질)인 질소산화물과 VOC를 줄이는 수밖에 없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자동차, 발전소 등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은 노후경유차 조기폐차 같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2010년 이후 배출량이 소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VOC는 2009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장영기 수원대 교수(환경공학)는 “VOC는 종류도 많고 배출량도 많지만 배출원 파악이 잘 안 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VOC는 굴뚝·배출부처럼 ‘정해진 루트’를 따라 배출되는 것(점 배출)과 부주의한 취급, 보관시설 틈새 때문에 ‘알게 모르게 새나가는’ 것(비산 배출)이 있는데 비산배출 기준은 2015년에야 마련돼 적용됐다. 이렇다보니 우리나라 사업장의 비산 대기 배출량의 비율은 61%로 미국(21%)에 비해 높다.

환경부 관계자는 “오존 취약시즌을 대비해 다음달 비산배출 사업장과 도료 제조·판매업체, 주유소에 특별점검을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오존 대비 특별점검은 이번이 처음인데, 1983년 대기환경기준을 설정해놓고 이제 와 관심을 보인다는 것도 그렇고, 오존 피크시즌(5∼6월)을 지나 현장에 나가본다는 것도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세계일보

◆숨은 배출원 ‘나무’…그러나 미워하지는 마시길

앞으로 나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질소산화물, VOC 같은 인위적인 원료물질 말고도 나를 만들어내는 인간 능력 밖의 숨은 조력자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나무다. 나무가 VOC를 배출해 오존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뜻이다.

지난 5월 국제학술지 ‘환경과학기술’에 실린 갈리나 추르키나(Galina Churkina) 독일 훔볼트대 박사 연구에 따르면 경우에 따라 나무는 오존의 최대 공급처가 될 수 있다. 추르키나 박사는 폭염이 덮친 2006년과 평년 수준의 기온을 보인 2014년 베를린의 여름에 주목해 도심 수목의 화학물질 배출량을 분석했다. 그 결과 낮 최고기온이 25도 안팎일 때는 나무의 오존 생성 기여도가 6∼20%였지만 30도 이상 넘어가는 날에는 나무의 기여도가 30∼60%까지 올라갔다.

추르키나 박사는 세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식물이 만들어내는 VOC가 도심 오존 오염도를 높인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칠 줄은 미처 몰랐다”며 “특히 식물 VOC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VOC보다 반응성이 커 오존을 더 많이 만들어낸다”고 전했다.

식물이 배출하는 VOC는 인위적인 VOC와 구분하기 위해 BVOC(biogenic VOC)라고 부른다. 한 연구에 따르면 연간 전 세계 BVOC 배출량은 1150TgC(탄소로 환산한 테라그램. 1테라그램은 100만t)나 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도 BVOC의 일종인 이소프렌의 연간 배출량을 220∼503TgC로 추정해 연구에 활용한 바 있다.

세계일보

나무가 오존의 배출원이라니 배신감이 들기도 하겠지만 이 역시 따지고 보면 사람 탓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는 “BVOC는 나무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나무는 해충 같은 외부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소프렌, 테르펜 같은 BVOC를 방출한다. 광합성처럼 자연스럽고 고유한 활동이다. 그런데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고온이나 가뭄 등으로 받는 스트레스에 적응하고자 더 많은 BVOC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나무를 오존 원료물질 생성의 조연에서 주연급으로 끌어올린 것도 결국은 인간인 셈이다. BVOC는 국토의 65%가 산림인 우리나라에서는 특히나 중요한 문제다.

이미혜 고려대 교수(지구환경과학)는 “나무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을 누리면서 오존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은 인위적인 배출물질(질소산화물, VOC)을 더 적극적으로 줄여야 한다”며 “수종별로 BVOC 배출량에 차이가 있는 만큼 오존 저감을 위한 도심 가로수종 연구도 진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나의 역주행을 막는 것은 미세먼지 문제보다 훨씬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일지 모른다. 쉽사리 포기하지 말고 꼭 정답을 찾아내기 바란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