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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한겨레 사설] 신고리 원전 시민배심원단 ‘숙의 민주주의’ 보여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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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부가 울산 울주군의 신고리 5, 6호기 핵발전소 건설공사를 잠정 중단하도록 했다. 공사를 재개할지 백지화할지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일정 규모의 시민배심원단을 선정해 공론조사 방식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갈등 사안을 합리적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 좋은 의사결정 방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앞으로 더는 원전을 새로 짓지 않고, 기존 원전은 설계수명이 끝나면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탈핵’의 길을 추구하겠다는 뜻이다. 지난해 6월 이미 공사를 시작한 신고리 5, 6호기도 대선 후보 시절엔 건설 중단을 공약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건설 계속을 요구하는 이해관계자가 적지 않은 만큼 좀 더 신중히 결정하자는 뜻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사업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은 공사 속도를 오히려 높였다. ‘매몰비용’을 키워 공사 중단을 어렵게 하자는 계산에서 한 일 같아 씁쓸하다. 결국 정부가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3개월 안에 최종결론을 내기로 했다.

신고리 5, 6호기를 계획대로 지으면, 탈핵을 추진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핵발전소가 모두 가동을 멈추게 되는 시기가 상당히 늦어진다. 신고리 6호기는 2022년 10월에 준공할 예정이고, 설계수명이 60년이나 된다. 더는 원전을 짓지 않더라도 2082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핵발전소가 하나라도 가동되는 셈이다. 탈핵의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다면, 탈핵 시기도 가능한 한 앞당기는 방안을 모색해야 마땅하다.

정부는 이해관계자나 에너지 분야 관계자가 아닌 사람으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불특정 국민 가운데 시민배심원단을 뽑아 의사결정을 맡기겠다고 한다. 원전 정책은 에너지 생산의 경제성뿐 아니라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두루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강력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정책이 휘둘리지 않게 해야 한다. 이번 결정 과정에는 이해관계자의 참가를 배제해야 한다. 시민배심원단이 각계의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두루 충분히 듣고 토론하여 결정하면, 국민의 폭넓은 공감 속에 결정이 이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일을 ‘숙의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로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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