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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50년 '보따리장사'로 모은 돈 몽땅 기부...나눔상 받는 77세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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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만원 기부한 서부덕 할머니 '행복나눔인상' 수상

지난해 고향 보성군에 장학금 전달…오랜 꿈 실현

"어릴 때 못 배운 게 한, 공부하고픈 사람 도움 되길 "

기부 전까지 지독한 가난, 3년전 다친 뒤 장사 손 떼

건강 안 좋지만 나눔 지속, 복지관에 1000만원 기부

뒤늦게 시작한 공부도 술술 풀려 "한글로 이름 쓸 수 있어"

"이제 더 기부할 것도 없어, 당장 내일 죽더라도 마음 편해"

중앙일보

2016년 10월 보성군장학재단에 기부금 8000만원을 전달한 서부덕(가운데) 할머니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보성군청]


"장사 별거 다 해봤어요. 너무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50년 동안 기부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을 쭉 먹다가…"


'보따리장사'는 서부덕(77) 할머니에게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다. 강원도에선 보따리에 고등어와 명태를 담아서 팔았다. 전남 여수에선 멸치를 머리에 이고 시장을 다녔다. 부산으로 가서는 김밥·핫도그 같은 분식도 팔아봤다.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5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얼굴에 깊이 팬 주름살과 거칠디 거친 손, 그리고 어렵게 모은 돈 9000만원이 그에게 남았다.

서 할머니는 지난해 10월 '쭉 마음먹었다'던 꿈을 어렵사리 실현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자 현 거주지인 전남 보성군을 위해 8000만원을 내놓은 것이다. 그는 지역 인재 육성에 써달라며 평생 모은 소중한 재산을 보성군장학재단에 기부했다.

장학금을 전달하는 방식도 '보따리장사'다웠다. 현금 8000만원을 은행에서 단번에 찾은 뒤 보따리에 꽁꽁 싸서 담당 공무원에게 전달했다. "내가 옛날에 없이 살아서 글도 제대로 못 배웠어요. 어딜 가도 못 배운 게 하도 원통해서 기부했어요. 공부하고 싶어서 애쓰는 사람들이 열심히 배울 수 있게 마음먹고 돈을 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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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장사로 모은 재산을 기부한 서부덕 할머니. [사진 복지부]


이처럼 어려운 형편에도 나눔을 몸소 실천한 서 할머니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행복나눔인상'을 받는다. 보건복지부는 29일 '2017년 행복나눔인 시상식'을 열고 서 할머니를 비롯한 개인 43명과 단체 10곳에 복지부장관상을 수여한다. 이 상은 나눔을 실천하고 사회적 귀감이 된 인물을 격려하기 위해 2011년부터 해마다 주어진다.

인생의 황혼기에 다른 사람을 돕고 상을 받기까지 서 할머니의 삶은 '가난'과 ‘한(恨)’으로 요약된다. 그는 "예전에는 1원짜리 빵, 1원짜리 쌀을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었다. 가난하게 살았으니 공부도 하고 싶어도 못 해서 결국 한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스무살에 결혼을 했지만 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생계를 위해 보따리장사에 뛰어들었다. 주중엔 각 지방을 돌아다녔고 주말에만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그마저도 농사를 지었던 남편과 잠시 얼굴 보고 반찬만 해주고는 다시 장터로 나섰다.

3년 전쯤 계단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친 뒤에야 장사를 그만 뒀다. 남편이 먼저 숨진 것도 그 즈음이다. 서 할머니는 "아직도 허리가 아파 죽겠어요. 요즘은 유모차 같은 보조 기구를 밀지 않으면 못 걸어다닐 정도죠"라고 토로했다. 몸이 좋지 않아 29일 열리는 시상식에도 참석하기 어렵다는 뜻을 복지부에 전달한 상태다.

하지만 건강 문제도 오랫동안 키워온 기부에 대한 열망을 막지 못 했다. 서 할머니는 더 미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지난해 8000만원을 먼저 기부했다. 올 들어서도 나눔 행보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엔 평소 다니는 벌교복지관에 남은 돈 1000만원을 기부했다.

그는 "이웃 독거노인들 좋은 데 쓰라고 있던 돈을 다 줘버렸어요. 그랬더니 고생해서 번 돈을 기부했다고 복지관 앞에 비석도 세워준다고 하더라구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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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2월 국무총리 서울공관에서 열린 '선행 실천 격려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서부덕 할머니는 앞줄 왼쪽 두번째 자리에 앉아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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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한 나눔 덕분에 생각지 못 한 서울 구경도 했다. 지난 2월 총리공관에서 황교안 당시 대통령권한대행을 만났다. 기부·봉사활동·인명구조 등 일상에서 선행을 실천하는 16명의 국민 중 하나로 추천받아서다.

이러한 기부의 힘일까. 뒤늦게 시작한 공부도 술술 풀리고 있다. 장사를 그만둔 뒤 공공도서관을 다니면서 한글 수업을 꾸준히 들었더니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원래는 '서부덕' 이름 석자를 쓸 엄두도 못 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이제 한글을 배워서 이름은 그냥 쓸 수 있고 글 읽는 것도 곧잘 해요"라고 자랑했다. 가난에 따른 한은 기부로 풀고, 공부에 대한 아쉬움은 만학(晩學)으로 풀어버린 셈이다.

서 할머니에게 남은 재산은 이제 방 두 칸짜리 작은 집 정도다. 그는 "이제는 더 기부할 것도 없어요. 나라에서 기초연금 주고 먹여 살려주니까 살기 괜찮지"라며 껄껄 웃었다. 다만 요즘 세태를 보면서 안타까운 점도 있다. "돈이 몇 억, 몇 십억 있어도 십원 하나도 안 내는 사람은 정말 안 내는 거 같아요. 그런 건 좀 아쉽지."

그래도 목표했던 바를 모두 이뤘다는 서 할머니는 힘을 주어 말했다. "당장 내일 죽어도 마음이 편해요. 할일 다 했으니 여한이 없으니까."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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