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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할아버지 보고 계시죠? 저 취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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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한 에티오피아軍 후손, 국제협력단 사업으로 현지 취업

조선일보

/KOICA


"가장이셨던 할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하러 한국에 가신 뒤, 남은 식구들이 무척 고생을 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손자인 저는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기술 교육을 받고 취직까지 했지요."

21일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참전용사후손 직업역량연수센터에서 인터뷰에 응한 비스랏 타데세(24·왼쪽)씨는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현지 기능대학 용접과를 나오고도 취업난을 겪었던 그의 인생은 작년 초 코이카 직업역량배양사업을 알게 되면서 달라졌다. 코이카 연수센터 용접배관공과에서 1년간 여러 전문 기술을 배운 후, 한국이 아디스아바바에 세운 명성기독병원(MCM)에 기술 담당자로 취직했다. 비스랏씨가 받는 초봉은 월 3500비르(약 17만2000원). 그는 "코이카 연수 전 용접회사 행정직으로 일할 때는 1000비르(약 4만9000원)밖에 못 받았는데 월급이 3배 이상 올랐다"고 했다.

지난 1995년 작고한 그의 조부 타데세 벨라처씨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34세의 황실근위병이었다.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가 한국에 파병한 황실근위대 강뉴부대의 일원으로 타데세씨는 한국에 왔다. 에티오피아에서 겪어보지 못한 추위로 고생하면서도 강원도 최전방에서 전투를 치렀다. 6·25전쟁이 끝나고 귀국한 뒤에도 고초는 끝나지 않았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북한과 싸웠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 비스랏씨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매달 1200비르(약 5만8000원) 정도인 할아버지의 연금으로 할머니, 어머니, 삼촌과 나까지 네 식구가 근근이 생활했다"고 했다.

늘 어려웠던 형편은 비스랏씨가 코이카 연수센터에 들어가면서 폈다. 교육 기간에 매달 생계 보조 수당 180달러(약 20만원)가 지급됐다. 비스랏씨는 "교육 중에 수당까지 받으니 꿈만 같았다"며 "1년 동안 열성을 다해 가르쳐 주신 한국인 교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코이카가 2012년부터 에티오피아에서 자동차, 용접, 배관, 컴퓨터 등 직업 기술을 훈련시켜 준 6·25 참전 용사 후손은 300명에 이른다. 지난 4월 졸업한 연수 수료생들의 직종별 국가공인자격증 취득률은 96%, 취업률은 무려 100%다. 비스랏씨는 "두 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평화를 위해 싸우셨던 분'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우리 가족이 한국에 대해 가진 '특별한 관심'은 아마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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