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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단독]장기 이식 기다리다 하루 3명꼴 숨지는데… 정부는 엇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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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운전면허 응시때 기증의사 표시 추진… 경찰 “합격조건 오해” 소극적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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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해가 저물며 김모 씨(38·여)의 애타는 하루가 또 지나갔다. 김 씨의 남편(41)은 간에 염증이 생겨 혼수상태를 오가는 중증 간경변증 환자다. 간 이식이 유일한 살길이지만 김 씨의 것은 이식에 부적합했다. 5개월째 다른 기증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앞서 기증을 기다리던 환자 3명 중 1명이 숨져 대기 순번 3순위가 됐다. 김 씨는 “다른 환자의 불행을 기다리는 것 같은 상황 탓에 날마다 죄를 쌓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장기이식 의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식할 장기는 만성 부족 상태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간 콩팥 심장 폐 췌장 등 장기를 이식받기 위해 대기하던 중 사망한 환자가 최근 5년간 5790명이었다고 26일 밝혔다. 하루 평균 3.2명이 장기가 없어 생을 마쳤다는 뜻이다. 이식 대기 중 사망자는 2012년 1050명에서 지난해 1320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이는 장기 기증자가 선진국의 6분의 1 수준인 데다 “뇌사에 빠지면 기증하겠다”는 신규 기증 희망자도 줄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 새로 등록한 기증 희망자는 2009년 18만337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8만5005명으로 감소했다. 누적 등록자가 131만1181명으로 전체 인구의 2.5% 수준이다. 예비 기증자가 해마다 530만∼820만 명 몰려 전체 인구의 40.1%인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형편없는 수준이다.

장기 기증을 활성화하려면 미국 등 선진국처럼 운전면허 응시원서에 ‘장기 기증 희망’ 여부를 묻는 항목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제안이 의료계와 환자단체에서 꾸준히 나왔지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은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복지부가 “운전면허는 경찰의 소관”이라고 ‘술래’를 넘기면 경찰은 “업무 부담이 늘어나니 보건소에서 희망자를 모집하라”며 받아치는 식이었다.

하지만 복지부는 최근 운전면허 응시원서에 해당 항목을 넣을 수 있도록 장기이식법 시행규칙 개정 검토에 착수했고, 조만간 경찰청과 협의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전 세계 ‘장기 이식 관광’(장기 밀매업자를 찾아 원정 수술을 떠나는 것) 여행자 중 한국인이 두 번째로 많다는 연구 결과가 해외에서 발표되는 등 장기 부족으로 인한 사회적 고통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우선 전국 운전면허시험장을 등록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할 방침이다. 현재는 기증 희망자에게 등록 절차를 설명하고 접수 등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등록기관 내에 ‘독립된 공간’을 둬야 하지만 시험장의 공간적 여건을 감안해 이 규정을 없애거나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미국은 별도의 독립 공간을 두지 않고 서류 접수 과정에서 “장기 기증에 동의하느냐”고 묻는 것으로 절차를 마무리한다. 영국은 해당 항목을 비워두면 면허증을 내주지 않는다.

운전면허 응시원서와 장기 기증 희망등록 서류(서약서)의 폐기 기한이 각각 ‘응시 1년 후’, ‘사망 1∼15년 후’로 서로 다른 제도의 허점도 손본다. 현행 규정상 등록기관은 기증 서약서 원본을 장기 기증자가 사망한 뒤 최장 15년간 보관해야 한다. 운전면허 응시원서는 이보다 훨씬 일찍 폐기하기 때문에 기증 희망자가 실제로 뇌사에 빠졌을 때 원본이 없어 서약도 효력을 잃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경찰은 일단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경찰이 장기 기증 의사를 물으면 운전면허시험 응시자는 ‘예’라고 답해야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고 오해할 가능성이 있고 △원동기 면허는 16세부터 취득이 가능하지만 현행 장기이식법상 부모의 동의 없이 미성년자는 기증 희망 의사를 등록할 수 없으며 △시험장 직원들이 장기 기증 관련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장기 기증 관련 항목을 넣고 성년 운전자부터 의사를 묻는 등 점진적으로 추진해 나가면 큰 무리가 없는데도 경찰이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한이식학회의 한 전문가는 “해외에선 이미 수년 전 도입돼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는 제도를 우리 정부는 조직, 인력 부족 탓만 하며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박훈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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