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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아직도 분단… 남북한 주민들에 죄지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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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6·25 정전협정 중립국감시위원단 활동, 폴란드 파블라크씨 방한

나치에 짓밟힌 조국 생각하며 근무… “당시 몇년 안에 끝날줄 알았는데…”

동아일보

6·25전쟁의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3년 만인 1956년. 폴란드에선 푸른 눈의 전도유망한 젊은 외교관이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는 상부로부터 ‘한반도에서 중립국 감시위원단으로 활동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한창 신혼이던 23세 외교관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건 당연지사. 가난과 전쟁. 이게 그가 떠올린 한반도 이미지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최연소 위원으로 활동한 스타니스와프 파블라크 씨(85·사진)는 현재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이목이 집중된 남중국해 영유권 판결도 그가 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주최한 학술회의 참석차 한국에 온 그를 21일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만났다.

유년기에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조국이 독일군에 짓밟히는 현장을 목격했던 파블라크 씨는 1956년 12월부터 1년 반가량 대부분의 시간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안에서 활동했다. 당시 감시위에는 유엔사가 임명한 2개국(스위스 스웨덴), 북한이 임명한 2개국(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에서 위원단이 파견됐다. 파블라크 씨는 “남북한의 총기·전투기·폭탄 등 현황을 파악해 무기 경쟁을 통제하고, 정전협정 이행 여부를 감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에는 몇 년 안에 남북한 주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할 날이 올 줄 알았다”며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한 주민들에게) 왠지 죄를 지은 기분이다.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955년 남한에선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위원단이 북한에 스파이 노릇을 한다’는 시위가 벌어졌다. 파블라크 씨는 “그때는 섭섭했지만 돌이켜보면 감시위 내 일부 무기 전문가들이 실제 스파이 활동을 했을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북한에 억류됐다 숨진 미국인 오토 웜비어 얘기를 꺼내자 그는 “내가 알고 지낸 북한 장교나 외교관들 중에도 간혹 갑자기 연락이 끊긴 경우가 있다”며 “이들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지 요즘 걱정이 많다. 김정은이 무섭고 두렵다”고 밝혔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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