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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NGO 발언대]삶을 바꾸는 리허설, 세상을 바꾸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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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배우가 무대에 오른다. 어떤 이는 대사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다른 이는 새로운 몸의 등장에 열광하며 극찬하고, 누군가는 장애인의 연기가 불편하고 안됐다 한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선 정상과 비정상, 감동과 정치에 관한 복잡한 소통이 오간다.

경향신문

내가 활동하는 단체의 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는 올해로 창단 열다섯 해를 맞이한다. 가족, 독립, 시설, 섹슈얼리티, 예술을 주제로 빚어낸 이야기가 수편이며, 매해 공연을 올린다. 꼬인, 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매력이 없는, 이상한…. 부정적인 평가와 시선을 몸으로 부딪치고 살아가는 장애여성배우들은 예술의 행위자로 사회의 변화를 위한 무대 안팎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는 이 안에서 기획, 배우, 연출을 거치며 함께하고 있다.

쉬운 창작은 없다. 공연 창작 과정은 사회가 제한하는 정상적인 몸의 가치를 거부하는 시간이다. 타인에 의해 규정되고, 보여지는 ‘대상’인 장애여성 감동스토리를 비판하며 배우들이 무대에 서는 이유다. 열심히 연습하지만 한 치의 오차 없는 휠체어 동선과 연기를 위한 기술 연마에 집중하진 않는다. 무대 밖의 시간을 무대 안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장애와 젠더가 교차하는 삶의 경험들을 쏟아내려고 더 많이 애쓴다. 그리고 특별한 경험이 ‘특별함’에 머물지 않고, 동정이 아닌 연대의 공명으로 울리길 바라며 한 장면이 만들어진다. 아마추어 같은 이 모습이야말로 프로 이야기꾼이 되기 위한 필수코스다. 연습시간은 길고도 짧다. 천천히 빠르게 하자는 독촉은 실은 기다림의 다른 말이다.

‘언제까지 공연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때 다 해보자!’ 불안은 오히려 용기로 이어져, 보조기를 벗고 휠체어에서 내려와 몸이 그리는 무대를 만들어왔다.

그런 배우들도 이제 나이 들어간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에 관절을 튕겨 춤을 추던 무릎은 닳았고, 연골은 탄력이 빠져 통증을 준다. 천천히 걸으며 비장애인의 역할을 하던 다리는 지탱할 휠체어가 필요하다. 기어서 무대를 가로지르게 해주던 손목 관절은 시큰거려온다. 나이 들고 변하는 몸은 배우들의 움직임을 가둘 것인가? 아마도 몸의 유한성과 무한성을 실험하는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언제는 우리가 뛰었어” 하면서 말이다.

“처음과 끝이 정해져 있어서 그 장소와 공간, 시간 안에서만큼은 딱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죠. 그 안에서만큼은 내가 너무 명확해져요.” 무대에서 처음과 끝의 주도권은 온전히 내 것이다. 본무대는 리허설이며, 삶은 실전이다. 무대 안에서 느낀 자유로움은 무대 밖 삶과 이어지며 치열함을 위한 힘을 준다. ‘비정상적인 몸’이라는 규정을 벗어난 무대 위, 장애여성배우들의 몸은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다. 그러나 현실에서 여전히 다른 몸을 가진 사람은 낮은 위치로 여겨지고 쉽게 인권을 무시당한다. 장애인 배우가 접근 가능한 공연장 찾기도 힘들고, 관람을 위한 수화통역, 자막조차 부족하다.

대선 기간 중 ‘장애인 문화접근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장애인 문화권을 공약으로 제시하라는 요구안을 전달했지만,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회와 예술의 주변부에 있던 장애여성이 연극 창작의 주체가 되려는 과정은 정상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도전이며, 변화를 위한 운동이다. 오늘도 장애여성배우들은 무대와 삶에서 리허설 중이다. 리허설은 변화를 향한 투쟁이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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