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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아침을 열며]난 잘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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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접한 한 기사의 제목이 가슴 한구석을 서늘하게 뚫고 지나갔다. 지난 7일자 경향신문 2면에 보도된 “한열아, 난 잘 살고 있는 걸까…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프다”는 제목의 기사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연세대 앞에서 시위 중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부축해 일으켰던 이종창씨의 인터뷰다. 이한열 열사와 함께 중환자실에 있다 살아남은 이종창씨는 매년 열사를 추모하는 자리에 나갈 때마다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린다고 한다.

경향신문

그 시절을 통과했던 많은 이들이 이종창씨가 되뇌던 질문 속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잘 산다’의 ‘잘’이 돈 많이 벌고 높은 권세를 얻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짐작이 된다. ‘제대로’ ‘옳게’ ‘부끄럽지 않게’ 등등의 의미를 함축한다는 것을 그 시절 사람들은 공감한다. 어쩌면 아주 무서운 말이다. 함께 추구했던 자유롭고 평등하며 민주적인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상에 과연 맞게 살고 있느냐는 강요적인 질문이다. 그 시절 학교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감옥에서 분투했던 선배, 친구, 후배, 이름 모를 동지 또는 나 자신에게 미안하게 살지 말자는 뜻도 담겨 있으니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낭독한 기념사에도 이런 질문이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저는 오늘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 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다”며 박관현·표정두·조성만·박래전 열사를 일일이 부른 뒤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 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진다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많은 이들 덕분에 30년 전 6월항쟁에 이어 지난해 촛불집회가 타올랐다.

무정한 세월은 야속하다. 30여년 동안 많은 이들이 그지없이 변했고, 속절없는 소시민이 됐다. 가끔씩은 자신들이 비판하고 경멸했던 이들의 모습을 자신 안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청년들은 세상을 바꾸려 들지만 흔히 자신이 변화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는 냉소적인 경구처럼. 사랑이 가면 신파만 남듯이 열정이 증발한 자리엔 그저 일상이 똬리를 틀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인간이 모두 거룩하고 위대한 존재인 건 맞지만 모두가 불퇴전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모두가 역사의 흐름을 읽는 지성과 그 흐름에 온몸을 던질 수 있는 용기를 갖기는 쉽지 않다.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는데 사람만 그대로라면 그게 문제일 수도 있다.

그래도 아직 시대를 움직이는 건 이 질문을 하던 세대다. 문재인 대통령뿐이 아니다.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있던 우상호 연세대 ‘총짱’은 여당 원내대표를 거친 정계 거물이 됐고, 신출귀몰 ‘홍길동’ 임종석 전대협 ‘의장님’은 대통령비서실장이 됐다.

사실 아주 예외적인 양 끝의 극히 소수를 제외하면 사람들 대부분은 그저 어느 정도 선하면서도 속물이고, 아주 나쁜 놈까진 아니지만 이기적이다.

그래도 진지했던 그러면서 아프기까지 했던 과거를 품고 있는 이들이 보다 더 진심으로 현실을 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손을 들어주고 싶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아는 인물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볼 것이라는 데 걸고 싶다. 난 잘 살고 있는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이들이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왜 하냐는 이들보다 덜 나쁠 것이라는 믿음이다.

가수 안치환은 이런 이유로 너를 사랑한다는 노래를 불렀다. “너의 시댄 이미 흘러갔다고 누가 말해도/ 나는 널 보면 살아 있음을 느껴/ 너의 길이 비록 환상일지라도/ 그 속에서 너는 무한한 자유를 느낄 거야/ 포기하지 마 너를 사랑한 이유/ 바로 그 믿음 때문에.”

이 시대도 길어야 이제 10여년 남지 않았나 싶다. 이 시대가 지나면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는 세상이 될까. 그 걱정은 그 시절을 담당할 이들에게 맡겨두자. 새 시대는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들이 끌고 갈 것이다. 그 사람들과 생각들에 동의 못해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집불통 아재’가 되는 건 경계하자. 그들의 몫이다.

이 계절이 가기 전에, 서로 사는 데 바빠 언제 얼굴 봤는지 기억조차 가물한 그 시절 친구를 만나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다. 가끔 통화할 때마다 언제나 그런 명랑한 목소리로 “그래 잘 먹고 잘 살고 있냐”고 인사하는 그 친구와.

<김준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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