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 라이팅에디터 |
흐름은 같았다. 근위병이 의회 지하 저장고를 살폈다. 1605년 의회 폭발 음모에서 비롯된 의식이다. 여왕이 상원회의장에 자리한 후엔 여왕 대리인인 블랙로드(흑장관으로 번역되는데 직역하면 검은 봉으로, 실제로도 검은 봉을 소지한다)가 맞은편 하원회의장으로 가 검은 봉으로 문을 세 차례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들어가 “여왕이 오시랍니다”고 외쳤다. 하원의원들은 그제야 상원회의장으로 건너갔고 여왕의 연설이 시작됐다. 여왕이 실권을 쥔 하원에서 연설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일 수도 있겠다. 의회에 맞서다 1649년 처형된 찰스 1세 이후 국왕의 하원 입장은 금지돼 있다. 하원의 독립성을 상징한다.
그제 달랐던 건 여왕이었다. 통상 황금마차를 타고 의회로 향했고 드레스 차림에 왕관을 쓰고 연설했다. 이번엔 자동차를 이용했으며 ‘평복’ 차림이었다. 왕관은 옆에 두고 모자를 썼다. 이른바 ‘약식’인데 1974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의례만 그때와 유사한 게 아니었다. 당시 에드워드 히스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조기 총선에서 635석 중 297석을 얻었다. 승리가 예견됐음에도 그랬다. 해럴드 윌슨이 이끈 노동당은 301석이었다. 어느 당도 과반을 얻지 못한 ‘헝 의회’였다. 히스가 연정 구성에 실패, 결국 윌슨에 의한 소수 정부가 출범했다. 같은 해 10월 또 총선이 치러졌고 노동당이 과반에서 한 석 많은 319석을 얻어 재집권했다.
1979년까지 집권 노동당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한두 표만 부족해도 정부가 무너질 수 있었다. 병상에 있다가도 투표하러 나와야 했다. 젊은 시절 거친 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노동당 의원들이지만 기나긴 대치를 버텨 내는 건 고됐다. 그 기간 13명의 의원이 숨졌다. 수뇌부는 수뇌부대로 야당뿐만 아니라 자당(自黨) 의원들과도 거래해야 했다. 믿었던 의원도 표값을 요구했다. 현실정치의 민낯이었다. “하루하루가 생존투쟁”이란 경험담은 허언이 아니었다. 소수 정부(650석 중 317석)의 수장인 테리사 메이 현 총리의 앞날이 순탄치 않은 이유다.
남 걱정할 일이 아니긴 하다. 의석수로만 보면 더불어민주당(299석 중 120석)이 더하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된 지 한 달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제가 정말 한 달 동안…”이라며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웰컴 투 레알폴리틱.
고정애 라이팅에디터
고정애 기자 ko.jung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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